[메트로 스케치]밀려나는 人道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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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5시50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 걸스카우트빌딩 앞 보도. 6m 폭의 보도엔 승용차와 트럭 5대가 두 줄로 주차돼 있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은 1m도 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법주차 차량에 보도를 내준 채 차도로 다녀야 했다.

차량이 보도를 장악한 서울의 현실. 한 건축가는 “보도에 주차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고 말했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차도 중심의 주차단속에서 벗어나 보도의 불법 주차를 집중 단속해 보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로2, 3가의 보도는 노점이 점령하고 있다. 물론 떡볶이를 사 먹고 액세서리 구경하는 것은 낭만적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는 법. 불법 노점과 이동식 간판 때문에 보행자는 걷기도 어렵고 시내버스에 올라타기도 쉽지 않다. 낭만은 사라지고 금세 짜증이 난다.

종로3가의 한 노점상은 “먹고 살려는 것인데 자꾸 불법, 불법하지 말라”고 했지만 보행권 침해는 명백한 사실.

건축 공사로 인한 보도 점용도 심각하다.

17일 오후 4시반경 종로구 낙원동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 시공업체는 종로구에서 인도 1m 폭의 점용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날은 아예 인도 전체와 차도를 막고 레미콘 공사를 하고 있었다.

19일 오후 5시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인 성북구 아리랑길. 트럭과 굴착기가 인도를 완전히 가로막고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굴착기의 육중한 삽날이 사람들 머리 위로 오가고 벽돌 조각이 튀어 오르는 데도 가림막 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건축공사로 인한 보도 점용의 경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다. 도로법에는 ‘도로 점용 허가 때 최소한의 인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 보행로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

일선 자치구에선 “대개 보도 1m 폭 이내로 허가를 내 준다”고 말하지만 이를 지키는 공사장은 별로 없다. 허가받은 점용 면적을 초과할 때 변상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그것도 건당 평균 42만원에 불과하다.

서울시의회 김춘수 의원은 “불법으로 도로를 점용할 경우 벌점을 부과해 앞으로 건축행위 허가 때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여러 차례 “불법 노점과 포장마차를 끝까지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9일 밤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웨스틴조선호텔 구간은 대형 포장마차 10여개가 보도와 차도 절반을 점령한 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보행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불법에 익숙해진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민연대 김 국장은 “불법 행위를 적극 신고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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