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북한의 역사 만들기'…北역사학의 한계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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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93년 ‘역사적으로 실재한 단군의 증거’로 발표한 뒤 복원한 단군릉. 남한의 역사학자들에게 이 사건은 북한의 역사학계에 비판적 거리를 갖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1993년 ‘역사적으로 실재한 단군의 증거’로 발표한 뒤 복원한 단군릉. 남한의 역사학자들에게 이 사건은 북한의 역사학계에 비판적 거리를 갖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의 역사 만들기/한국역사연구회 북한사학사연구반 지음/336쪽 1만3000원 푸른역사

광복 다음 해인 1946년의 일이다. 그해 9월에 북한에서는 김일성대학을 개교하기로 돼 있었는데 막상 교수를 담당할 학자가 태부족이었다. 김일성 북조선임시인민위원장은 7월 말 직접 남쪽으로 밀사를 파견해 학자들을 초청했다.

이때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여 월북한 학자들 가운데 김석형이라는 31세의 젊은 역사학자가 있었다. 그는 대구의 유복한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나 경성제국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서울사범대 교원으로 초빙을 받았기에 남쪽에서 편안히 존경받는 삶을 누릴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월북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김석형이 사망할 때 그 운명의 선택에 만족 했을지, 후회했을지 그 본심이야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연구가 남북을 막론하고 한국 역사학계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학설을 지금도 후학들이 쉽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석형 외에도 북한 역사학자로서 남북 양쪽에서 주목해온 인물은 적지 않다. 백남운 박시형, 그리고 생존인물인 허종호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거목들이 있었기에 남쪽의 역사학자들은 북쪽의 역사 연구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때로는 그 성과를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남쪽의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몇몇의 탁월한 연구 성과뿐 아니라 북한식 역사인식체계 자체를 긍정 수용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던 남쪽의 역사학계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북쪽 역사학계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0년대 말∼90년대 초부터였다.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현실사회주의’를 재인식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1993년의 단군릉 문제가 컸다. 북한은 단군묘로 불리던 평양시 강동군의 한 무덤을 진짜 단군 무덤이라고 발표하였고 더 나아가 ‘대동강문화’를 세계 4대문명에 비견하기까지 했다. 남쪽의 많은 역사학자에게 이 같은 주장은 ‘신화를 사실로 바꾸고 우리 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워 이를 북한체제 유지에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책은 북쪽 역사학계에 대한 이러한 남쪽의 애증을 담고 있는 책이다. 8명의 필자는 북한 역사학계의 성과들을 가급적 존중하여 소개하되 다른 한편으로 이들 성과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단호하게 드러냈다.

나아가 이 책은 남북한의 역사학이 함께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남북 역사학자들은 모두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유물사관이든 근대화론이든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공통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전제 속에서 남북은 서로 자신이 민족사의 중심이라고 고집하면서 반쪽의 ‘국민 만들기’ 프로그램에 역사학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북한의 역사 만들기’다.

물론 이상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남북 역사학계가 역사를 민족 중심적이며 발전적으로 파악해온 것은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이 같은 이해방식 자체는 통일의 소명이 남아있는 한, 국민국가의 틀이 필요한 한 유효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남북 역사학계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사실은 분단국가 유지에 오히려 기여해오지 않았나 하는 지적은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들뜨기 쉬운 남북문제를 차분하게 곱씹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다.

김성보 충북대 교수·한국현대사 kimsb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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