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소리 없는 정복:글로벌 자본주의와 국가의 죽음'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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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정복’의 저자 노리나 허츠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기업의 권력남용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재계 공동주최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토머스 도나휴 미 상공회의소장(일어선 사람)의 제의에 따라 건배를 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소리 없는 정복’의 저자 노리나 허츠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기업의 권력남용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재계 공동주최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토머스 도나휴 미 상공회의소장(일어선 사람)의 제의에 따라 건배를 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소리 없는 정복:글로벌 자본주의와 국가의 죽음/노리나 허츠 지음 조영희 옮김/339쪽 1만5000원 푸른숲

후세의 역사가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홉스봄이 지난 19세기를 ‘자본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듯이, 1970년대 이후 세계 사회는 아마도 ‘세계화의 시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서유럽은 물론 정통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노동자당 대통령 룰라의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변화와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세계화다.

지난 몇 년간 이 세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룬 책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한편에서 세계화를 새로운 시대적 흐름으로 옹호하는 견해도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의 덫’ 또는 ‘빈곤의 세계화’를 경고하는 저작들도 있었다. 찬사를 보내든 비난을 하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이미 세계화라는 질주하는 호랑이의 등을 타고 있으며, 이 질주가 어디로 향하는지가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노리나 허츠의 ‘소리 없는 정복’은 바로 이 세계화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여기서 흥미롭다는 것은 복잡다단한 세계화의 구조와 동학(動學)을 다양한 사례와 자료들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국내에서도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세계화의 덫’이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계보 속에 놓여 있다.

다른 책들과 비교해 이 책이 갖는 강점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국가의 무력함을 예리하게 분석한다는 점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국가는 시민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자본주의라는 브랜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고 그 권력을 거대 기업에 넘김으로써 이른바 정당성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국가의 복원과 시민사회의 강화다. 저자는 오늘날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하더라도 기업의 권력남용을 제재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마지막 거점은 역시 국가라고 본다. 더불어 비정부조직(NGO)은 최근 반세계화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외형은 자유롭지만 이면은 더없이 냉혹한 시장의 원리에 맞서는 또 하나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리 없는 정복’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흥미로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보고서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아쉬움은 흥미를 넘어선 독창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내용은 많은 부분 이미 다른 책들에서 다뤄진 바 있으며, 대안으로 제시하는 일종의 개혁 세계화론도 그리 새로운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현실이 강제하는 힘을 규범적인 처방으로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제어할 수 있느냐에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인간적인 세계화를 갈망하고 있음에도 그 길로 나아가는데 여전히 자본의 강제력이 압도적이라는 게 세계화 시대의 본질이다. 비인간적인 세계화를 넘어설 수 있는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남긴 숙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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