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 매각확정]사후손실 대폭 보상…헐값 매각 논란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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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조흥은행을 잘 판 것일까.’

조흥은행의 자산가치와 현재 주가를 비교해 보면 정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팔았으나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신한금융지주는 조흥은행을 인수해 국민은행에 이은 국내 2위의 은행으로 단숨에 뛰어올랐으나 조흥은행 노조의 반발과 파업이 가져오는 후유증으로 합병 효과를 제대로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매각 조건을 살펴보면=조흥은행 매각 조건을 보면 정부와 신한지주가 서로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았다.

정부는 조흥은행의 주당 가격을 작년 말 5520원에서 6200원으로 올려 받아 조흥은행 재실사 기관인 신한회계법인이 상향 제시한 평가가격을 반영했다는 명분을 얻었다.

신한지주에서 받는 상환 및 전환우선주의 가격을 1만8086원으로 확정한 것도 수확이다.

반면 신한지주는 사후손실보장 6500억원을 얻어내는 실리를 챙겼다. 또 현금으로 지급하는 매각대금도 1조7000억원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9000억원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2년 안에 주는 방식으로 이자부담을 줄였다.

정부에 지급하는 주식도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로 해 기존 대주주 지분이 떨어지지 않는 부수이익을 얻었다.

정부가 조흥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2조7000억원인데 이번 매각에서 손실보장을 공제한 금액이 2조7200억원이어서 신한지주가 이 금액을 지켜주는 대신 다른 부대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개입=노무현 대통령이 1월 초 조흥은행 노조 및 금융노조 위원장을 만나 재실사를 약속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조흥은행의 잠재 부실이 현실로 드러나 인수가격이 깎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재실사는 2∼4월에 이뤄졌고 이때 SK글로벌과 신용카드 관련 부실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

따라서 1차 실사결과만을 토대로 지금처럼 매각협상을 빨리 진행해 끝냈다면 사후손실보장 금액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신한은행의 부상, 아직은 미지수=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3월 말 기준 총자산은 각각 74조4000억원, 74조8000억원이어서 합병하면 149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국민은행(219조원)에 이은 2위로 우리은행(107조원)보다도 40조원 많은 규모.

이에 따라 국내 은행산업은 국민 신한 우리 등 3개 은행 중심으로 재편되고 시장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국민은행은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됐다.

그러나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으로 신한은행의 앞길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예금인출 사태가 터지면서 조흥은행의 자산규모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흥은행 직원과 신한은행 직원이 화학적으로 융합하지 않으면 합병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번 파업사태를 계기로 조흥은행 직원들의 비협조가 눈에 띄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한-조흥은행 합병의 성패는 파업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합병 시너지 효과 의문

조흥은행 파업이 계속되면서 신한지주의 조흥은행 인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신한지주는 인수대금 마련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파업으로 조흥은행 고객이 이탈하고 은행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흥은행노조의 파업은 공권력이 행사되지 않으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갈수록 떨어지는 조흥은행의 자산가치=옛 국민-주택은행이 2000년 12월 파업에 들어갔을 때는 한 달 새 약 1조원의 예금이 빠져나가는 데 그쳤지만 조흥은행은 1주일 동안 2조원이 빠져나갈 정도로 고객 이탈이 심각하다.

조흥은행의 경쟁력은 순이자마진(NIM·대출금리-조달금리)이 4%포인트대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높다는 데 있다. 그러나 개인고객의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면 NIM이 낮아져 조흥은행의 기업가치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또 다른 손실은 영업기반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소매금융에 주력하는 은행은 우량 대출고객 발굴이 중요하다. 그러나 파업으로 은행의 신뢰도가 떨어져 개인고객이 떠나면 영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신한지주는 이 같은 조흥은행의 파업손실을 추정해 인수대금에서 제외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조흥은행은 개인고객과 법원공탁금 등 저(低)원가성 예금이 많다는 것과 전국 지점망을 갖췄다는 것이 강점”이라며 “파업으로 고객이 이탈하면 신한지주가 인수한 후에도 시너지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공권력 행사 없으면 파업 길어진다=정부는 파업을 끝내기 위해 신한지주가 조흥은행의 요구조건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신한지주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흥은행노조는 정부와 신한지주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기파업으로 끌고 가겠다는 자세다.

홍석주(洪錫柱) 조흥은행장은 18일 새벽 최영휘(崔永輝) 신한지주 사장을 만나 가격문제와는 별도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협상안은 △조흥은행을 2년간 독립 자회사로 두지 않고 곧바로 합병하되 △신한-조흥 통합은행 임원의 50%와 신한지주의 부회장을 조흥은행 출신으로 선임할 것 △조흥은행 직원의 현재 고용수준 유지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흥은행측이 즉시 합병을 주장한 것은 현재 조흥은행 직원이 신한은행보다 많아 합병 후 자신들이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신한지주 관계자는 “최 사장이 홍 행장의 제안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누가 누구를 인수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수용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신한지주는 조흥은행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주는 방안을 찾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통합은행의 주도권을 조흥은행에 넘기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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