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라인배커(linebacker)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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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함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대표적인 전략게임 중 하나다. 미식축구는 겉으로만 보면 덩치 큰 젊은이들이 뒤엉켜 부닥치는 단순하고 거친 운동같아 보이지만 찰나의 순간에 다양한 작전이 구사된다. 공수의 핵심은 쿼터백(quarterback)이다. 그의 손짓 하나에 나머지 선수 10명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포지션 중에는 라인배커(linebacker)라는 역할도 있다. 수비수로 분류되는 라인배커는 그라운드를 종횡으로 누비며 때로는 공격에도 가담하는 등 축구로 치면 리베로와 같은 기능을 한다.

▷최근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이 ‘라인배커’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해 관심을 끈다. 어제는 미2사단 공보실의 한 미군 장교가 “2사단은 인계철선(tripwire)이 아닌 라인배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단장의 말을 언론에 흘렸다. 그동안 미국은 ‘인계철선’이라는 표현에 심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인계철선이란 말 자체가 전쟁 발발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받기 위해 2사단이 북한의 공격사정권 안에 주둔하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라인배커는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대신 내놓은 새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러 정황에서 볼 때 2사단의 라인배커 역할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얼마 전 앞으로 수년간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 전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세계적 차원에서 추진 중인 군사력의 경량화·기동화 전략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첨단무기를 갖춘 신속배치여단(Stryker Brigade Combat Team)을 한국에 순환 배치하겠다는 구상이 그런 예다. 복싱에 비유하자면 주한미군은 상대방 지근거리에서 싸우는 인파이터에서 상대방 주변을 돌며 기회를 노리는 아웃복서로 스타일 변화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한미군의 변화 조짐이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엊그제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가 한반도 위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우리 안보를 강화시켜주는 한편 불안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한미군 재편 과정에 우리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미식축구가 팀워크의 게임인 것처럼 한반도에서의 군사작전도 한미 양국간 팀워크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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