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안인해/韓中정상 ‘준비된 만남’을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43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주변 4강 지도자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 한일 정상회담은 이미 끝났고 중국 및 러시아 정상과의 만남도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에 임하는 대통령과 정부 실무진의 의욕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국내 비판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특정 발언’이 국민의 입에 회자되면서 정작 정상회담 성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런 결과 또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은 ‘준비된 회담’이 되어야 한다. 명분 못지않게 실리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조율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中 "北核 대화해결" 계속 강조▼

북핵 문제는 17, 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10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북한은 다자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북-미 회담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진의를 파악하고 핵 공격을 감행할 의사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양자회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다자회담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사가 없다면서 대북 경제지원도 핵 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ARF에서 만난 한미일중 외무장관들은 북한이 다자회담에 불응하면 핵 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자는 미국의 제안을 논의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마약, 위조지폐 수출 등으로 연간 10억달러 상당의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10일 호주 일본과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어 12일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실천방안을 놓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0개국과 머리를 맞댔다. 미국 주도로 북한에 대한 다양한 봉쇄 가능성과 대비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북한선박에 대한 철저한 검색을 시작했고 만경봉호 등이 일본 입항을 포기했다. 1년에 북한 선박 1500척이 일본에 입항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경제제재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총련의 준외교관 지위를 인정해 면제하던 세금도 부과하기로 했다.

경제난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와 차단되면 북한체제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식량 부족분의 절반 이상과 에너지 부족분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대북한 경제제재에 동참하기만 한다면 군사제재는 필요하지 않으며 반드시 평화적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중국의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북한, 미국과의 3자회담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바꿔 일본과 한국이 참여하는 5자회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강행 등으로 문제를 악화시키면 중국도 포용할 명분이 없다. 북한 핵 문제로 유발될 동북아국가들의 핵무장은 역내 유일한 핵보유국인 중국에는 그야말로 재난일 뿐이다. 그렇지만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은 필요할 경우에도 북한이 크게 반발하지 않을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盧는 실용적” 이미지 계속 지켜야 ▼

‘코드’를 중시하는 현 정부의 핵심 보좌진은 북한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미국과 일본에 맞서 중국이 견제 역할을 하기를 내심 기대할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이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변신’이 아쉽고, 또 다른 ‘변신의 변신’을 통해 코드를 되찾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북한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그의 ‘변신’과 ‘실용외교’에 대한 비판과 소모적 논쟁은 확산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은 실용적 이미지를 일관되게 유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사려 깊은 정책 판단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yhahn@kore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