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강진군 점자교실 뜨거운 향학열

  • 입력 2003년 6월 18일 2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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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기역 받침은 어디에다 표시해야 합니까.”

“할아버지, 칸 오른쪽 모퉁이 맨 위쪽에 점을 찍어 주세요.”

18일 오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시각장애인협회 강진군지회 사무실.

3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1, 2급 시각 장애인 14명이 동료 시각 장애인 강사로부터 점자를 배우고 있었다.

난생 처음 점자를 접한 시각 장애인들은 손끝에 걸리는 점들을 만지작거리고 점자 침으로 종이에 점을 찍으며 배움의 기쁨에 들떠 있었다.

‘점자교실’은 시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각종 정보를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강진군과 시각장애인협회 강진군지회가 마련했다.

13일 개강이후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동안 열리는 점자교실은 9월10일까지 계속된다. 당초 수강생 정원을 10명으로 정했지만 강의가 거듭될수록 점자교실을 찾는 장애인들이 늘어 시각장애인 강진군지회측은 책상과 의자를 늘렸다.

일반인 자원봉사자가 많은 수화(手話)와는 달리 점자는 전문적인 분야인 데다 점자를 익힌 자원봉사자들도 거의 없어 점자교실 강사는 동료 1급 시각 장애인인 김영호씨(48)와 전종열씨(38)가 맡았다.

“무엇보다 동료 장애들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 마음이 뿌듯합니다.”

1988년 한국통신공사(지금의 한국통신)에서 근무하다 포도막염으로 망막세포가 파괴돼 시각을 잃은 강사 김씨는 “수강생 대부분이 한글을 몰라 점자를 가르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해 머지 많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강생들 가운데 최고령인 윤재연씨(77)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고충을 나누고 함께 글을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진지역 시각 장애인은 244명. 이들 중 점자를 활용할 줄 아는 장애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각장애인복지재단 등 장애인 단체에서 장애인들에게 보내주는 점자신문이나 잡지는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었고 도서관 등 공공시설 이용도 꿈을 꾸지 못했다.

시각장애인협회 강진군지회 이상묵 지회장은 “강의실이 25평 정도로 비좁고 강사가 맨투맨식으로 가르쳐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지만 배움의 열기만큼은 뜨겁다”며 “장애인들의 자활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도보 체험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고 말했다.

강진=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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