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 노조, '매각 사실상 타결'에 조기파업 맞불

  • 입력 2003년 6월 1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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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나섰던 ‘조흥은행 매각문제’가 결국 조흥은행 노조의 전격 파업이라는 국면으로 전개됐다.

조흥은행 노조는 ‘매각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매각협상을 타결지은 상황이어서 이번 파업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제 인프라(기반시설)를 이루는 은행의 파업은 경제 혼란은 물론 국가 대외신인도 추락 등 많은 후유증을 불러온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조흥은행 노조는 17일 저녁 은행 매각이 사실상 타결됐다는 사실을 듣고, 즉시 파업준비에 들어갔다. 당초 총파업 예정일인 25일까지 기다렸다간 정부의 매각작업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정부는 21일 열리는 공적자금위원회 매각소위에서 조흥은행 매각안을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와 조흥 노조의 입장이 워낙 달라 이번 파업은 ‘시간의 문제’였지 그 자체를 막기는 어려웠다.

노조는 일괄매각 포기 등 매각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 반면 정부는 일괄매각을 원칙으로 하되 고용 승계와 임금 등 근로 조건 개선 문제만 협상의제로 삼았다. 이처럼 당초부터 접근 방식이 판이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대외신인도 차원에서 매각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었다.

또 조흥 파업 문제를 ‘여름투쟁(夏鬪)’의 기폭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정부간의 ‘힘겨루기’ 측면도 작용하면서 조흥 매각 문제는 정부와 노동계 사이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미 30일부터 동조 파업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의 싸움이 된 것.

▽법과 원칙 외에 해결방법이 없다=당분간 조흥은행의 부분적인 업무마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측은 필수 관리인력 2000명에 대체인력 400명 등 2400명을 현장에 투입한다는 방침이지만 어음 결제, 대출, 송금, 수출입 대금 결제, 외환업무 등 손이 조금이라도 가는 창구 업무는 지장이 생길 게 뻔하다.

또 파업이 장기화하면 전산망이 다운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조흥은행 전산망을 가동하는 필수요원 30여명(대체인력 5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 300여명은 17일 오후 근무지를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필수요원만으론 전산망을 장기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총파업 장기화에 따른 금융 혼란 우려가 크고 노조 역시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서 조기에 해결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그간 보여준 원칙 없는 해결책이 이번에도 되풀이될 경우 한국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법과 원칙을 벗어난 해결책은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크게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조흥 사태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흥은행 사태 일지
2002년10월8일정부, 조흥은행 지분매각 방안 발표
12월2일신한금융지주, 서버러스 컨소시엄 인수제안서 제출
12월26일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원회,신한지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2003년1월14일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금융노조 조흥노조와 회동
제3자의 객관적인 조흥은행 실사 합의
1월23일공자위, 신한지주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2~4월신한회계법인, 조흥은행 재실사
5월26일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 금융노조 조흥노조와 회동
6월2일청와대, 조흥은행 민영화 토론회
6월17일정부, 매각협상 사실상 타결
6월18일조흥노조 전면파업 선언한국노총, 30일 동조파업 선언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매각 어떻게 진행됐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파는 사람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철칙은 조흥은행 매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조흥은행 매각협상이 7개월여 만에 타결됐지만 정부의 노동정책 혼선으로 조기매각에 실패하면서 지불한 대가는 무려 7000억원이나 된다. 이만큼 공적자금이 덜 회수돼 그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된 것.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정부의 조흥은행 지분 80.04%를 모두 인수하되 △매입대금의 51%는 주당 6200원으로 평가해 현금(1조7000억원) △24%는 신한지주의 상환우선주 △25%는 보통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 2년 동안 조흥은행의 추가부실을 최대 7000억원까지 정부가 보장하기로 했다.

작년 12월 신한지주가 제시했던 조건과 비교해 보면 주당 평가가격은 6150원에서 50원 올라갔으나 금액은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사후손실보장 7000억원은 올 들어 조흥은행의 SK글로벌(4402억원) 및 신용카드 관련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추가된 것. 신한지주가 정밀실사 후 최대 10%까지 가격을 깎을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한 것과 비교해 봐도 정부측 손해가 예상보다 크다.

물론 경기가 좋아져 부실여신이 정상여신으로 바뀌면 손실보장금액은 줄어들겠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작년 12월 초 신한지주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신속하게 본계약 협상을 진행했다면 손실보장금액을 크게 줄일 수 있었으나, 조흥은행 노조의 반발과 정부의 불분명한 대응으로 협상이 늦어지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

여기에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초 당선자 시절 조흥은행 노조를 전격 방문하면서 노조측에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점도 노조의 매각 반대 공세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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