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찾는데 돈이 없다니…”…조흥銀 고객들 분노

  • 입력 2003년 6월 18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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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금을 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임산부.’ ‘현금인출기를 찾았다가 현금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며 허탈해하는 회사원.’ 조흥은행 노동조합이 18일 갑작스럽게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시민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2000년 12월 옛 국민-주택은행 직원들의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던 악몽이 되살아난 것. 은행은 일반 제조업체와는 달리 자기 돈이 아닌 고객 돈을 받아 영업하고 은행전산망은 사회의 인프라(기반 시설)이므로 은행 파업은 곧바로 국민의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진다.》

▽고통스러웠던 하루=이날 조흥은행 471개 점포 가운데 서울 본점영업부를 포함해 60여개 점포가 아예 문을 닫고 나머지 점포도 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커다란 혼란이 빚어졌다.

문을 연 점포도 간단한 입출금을 제외한 대출 외환 어음 상담 등의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지점 현금자동코너를 찾은 김향라씨(42·주부)는 “결제할 게 있어서 돈을 찾으러 왔는데 인출기에 현금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배모씨(55·여)도 “현금카드 신청을 해놓지 않아 현금지급기를 이용할 수 없다. 곗돈을 부쳐야 하는데 큰일났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청원경찰과 함께 텅빈 지점을 지키고 있던 마포구 신수동지점 장경구 지점장은 “오전에 잠깐 문을 열었지만 손님들이 몰려와 다시 문을 내렸다”며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고객들이 돈을 찾아가겠다고 아우성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조흥은행 노조원 5000여명이 모여 있는 서울 중구 본점은 전쟁 피란지처럼 어수선했다.

▽노조는 투쟁 중=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하늘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직원들은 전날 밤을 새운 탓인지 대부분 지친 표정이었다.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복도 곳곳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자고 다른 사무실에서는 남자 직원들이 삭발식을 가졌다.

노조 집행부는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본점출입구를 모두 봉쇄한 채 출입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굳게 닫힌 철문 사이로 직원 가족들은 간간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본점 주변에는 2개 중대 경찰 240명이 배치됐다.

▽전산망은 안전한가=이번 조흥은행 파업의 고비는 전산망 가동여부.

전산망이 다운되면 조흥은행을 통해 이뤄지는 모든 금융거래가 중단되기 때문에 전체 금융시스템에 커다란 혼란을 줄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조흥은행 전산센터는 일단 정상적으로 가동돼 인터넷뱅킹은 차질없이 이뤄지고 있다. 17일 밤 파업위기가 고조되면서 조흥은행 임원진과 금융감독원이 전산센터를 먼저 장악했기 때문.

현재 정규직원 30여명과 협력업체 직원 50여명만이 전산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교체인력이 없어 매일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전산망이 다운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조흥은행 허흥진 노조위원장은 “전체 직원 320명 가운데 305명이 근무지를 떠나 지방으로 집결하고 있어 19일에는 전산망이 완전 다운될 것”이라며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면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파업 계속땐 他은행서 입출금 가능”▼

조흥은행의 창구 영업 중단이 계속되면 조흥은행 고객들은 다른 은행에서 입출금을 할 수 있게 된다.

백재흠 금융감독원 은행검사1국장은 “조흥은행 고객이 통장을 갖고 국민은행 등 다른 은행의 점포에 가면 예금을 찾을 수 있도록 은행간 대지급(代支給)을 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흥은행 예금 담보 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도 가능하다.

또 조흥은행 발행 자기앞수표의 대지급과 어음 교환 업무, 소액 대출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2000년 7월 은행 총파업 때 은행간 지원이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해 분기별로 시험가동을 해왔다.

이 시스템에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제외한 17개 은행이 포함돼 있어 조흥은행 고객들은 2개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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