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부자'가 더 구두쇠

  • 입력 2003년 6월 18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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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2월 결산 상장(上場)기업 중 지난해 1년 동안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기업은 한국전력공사로 모두 768억여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30대 그룹의 평균 기부금 액수는 매출액의 0.15%인 200여억원에 불과해 기업들의 기부 수준이 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은 18일 상장기업 555곳의 지난해 기부금 현황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재단 정책자문단(단장 예종석·芮鍾碩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이 금육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상장기업 감사보고서(2002년 1월1일~12월31일)를 토대로 조사한 것이다.

▽기부 실태=기부금 액수로는 한전에 이어 SK텔레콤(674억원), KT(566억원), 포스코(435억원), 현대중공업(412억원)이 2~5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기부액은 매출액의 1%가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다.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을 보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디에이블(옛 대원제지)과 한섬이 각각 5.96%, 5.40%로 매출 규모에 비해 많은 기부를 했고 한올제약, 새한, 아세아시멘트 등도 매출액의 2% 안팎을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선정한 30대 기업집단(그룹) 중에서는 SK그룹이 가장 많은 1069억원을 기부했고, 다음은 삼성(820억원), 한전(770억원), KT(570억원), 포스코(440억원) 순이었다.

555개사 가운데 세금 감면혜택 한도(매출액의 5%)를 넘겨 기부한 기업은 디에이블과 한섬 두 곳에 그쳤고, 매출액의 1% 이상을 기부한 기업도 16곳에 지나지 않았다.

▽순수 기부는 쥐꼬리=아름다운재단이 집계한 기부금 항목에는 정치자금, 사내 근로복지기금, 체육단체 기부금 등도 포함돼 있어 순수한 의미의 기부금은 더욱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 2위를 차지한 의류업체 한섬의 경우 기부금 80여억원 중 80%인 63억5000만원이 사내 근로복지기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제약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병원에 기부하는 로비자금이나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준(準) 조세' 성격의 성금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재단 관계자는 "세부적인 기부금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국세청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기부금 분류항목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며 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세청인 IRS는 매년 기업의 기부금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번 조사를 기초로 상위 기업에 대한 2차 설문 및 방문조사, 사회공헌활동 조사를 병행해 11월 심포지엄을 열어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부문화 가로막는 세제=이처럼 기업의 기부활동이 저조한 것은 '기부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풍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제가 미흡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조사를 맡은 예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체 기부금 중 기업이 낸 돈이 80%에 이를 정도로 기업 의존도가 높다"며 "기업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기업 기부금 세액공제 한도가 50%, 일본은 25%인데 반해 한국은 5%에 그친다는 것.

아름다운재단 측은 "기부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어 국내 기업 대부분이 즉흥적으로 1회성 기부를 한다"며 "기부금을 내는 시기가 연말에 집중되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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