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족][요리]'…모임요리' "아이와 요리하면 정서발달 좋아"

  • 입력 2003년 6월 17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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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 허브 향기좀 맡아보세요.” 큰 딸 민주는 엄마 이혜영씨가 일을 시작하는 것을 반기는 눈치다. 몇년 후면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집을 떠날 텐데 엄마가 외로울 것이 걱정된다고. 그러나 이씨는 딸들이 엄마의 맛과 멋이 가득 담긴 음식이 그리워 자주 들락날락할 것이라고 믿는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엄마,이 허브 향기좀 맡아보세요.” 큰 딸 민주는 엄마 이혜영씨가 일을 시작하는 것을 반기는 눈치다. 몇년 후면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집을 떠날 텐데 엄마가 외로울 것이 걱정된다고. 그러나 이씨는 딸들이 엄마의 맛과 멋이 가득 담긴 음식이 그리워 자주 들락날락할 것이라고 믿는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부 이혜영씨(39)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학교에서 막 돌아온 큰딸 민주(15·서울외국인학교 9학년)가 자기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막 구워낸 빵을 따끈한 커피에 적셔 먹는데, “이 빵은 아이를 위해 구운 걸까, 나를 위해 준비한 걸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오븐 타이머를 맞춰 놓았다가 아이가 집에 돌아오기 20분 전부터 굽지요. 집에서 빵냄새가 나고 국이 뽀글뽀글 끓으면 가족 모두가 안정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이씨가 요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현실적 필요때문이었다. 80년대말 결혼하자마자 유학생의 아내가 되어 미국으로 떠난 이씨 역시 당시 분위기대로 집안일에 가치를 두지 않는 ‘새내기 주부’였다. 그러나 이국땅에서 당장 세끼를 해결해야 했고 다른 사람을 사귀기 위해선 모임을 만들어 어울려야했다. “저에게 주어진 공간을 활용했어요. 사람을 모으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요.”

이씨는 바로 연년생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캘리포니아에서 7년을 살았고 남편이 뉴욕주립대 교수가 되면서 롱아일랜드에서 7년을 더 살다가 지난해 귀국했다. 그러면서 터득한 레서피가 1000개나 된다. 크고 작은 모임을 치러야 하는 요즘의 ‘새내기 주부’를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담고 110가지 모임요리를 추렸더니 ‘하루 만에 준비하는 모임요리’(동아일보사 펴냄)라는 산뜻한 책이 되어 나왔다. 된장찌개 끊이는 것만큼 쉬우면서도 집들이 집안행사 아이들 생일을 색다르게 차릴 수 있다고. “이렇게 차리면 가족이나 손님이나 정성에 놀라고 맛에 놀랍니다. 그럼 모두가 내 편이 된다”며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아이들 교육에도 요리가 참 좋아요. 작은 딸 민지(14·서울외국인학교 8학년)가 만 한살반이 됐을 때 식탁에 앉아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르게 했어요. 족히 한시간은 걸렸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요.”

핼러윈 쿠키나 호박파이를 구웠을 땐 아이들이 직접 장식하도록 했다. 요리하면서 작은 스푼을 쥐어주고 “두 큰술은 작은 술로 네 번 넣어야한다”는 사실을 체험토록 했다. 아이들과 함께 요리책을 이것저것 읽다보니 영어공부까지 됐다. 아이들에게 만지고 보고 냄새 맡도록 한 뒤 추상적 개념을 터득토록 하는 ‘몬테소리’교육법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씨는 두딸이 만 두세살 때부터 시간을 내 2년 과정의 ‘국제몬테소리스쿨’을 졸업하고 1년간 인턴십과정을 마쳤다.

타고난 성향대로 키운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이씨는 첫째가 계획적인 데 비해 둘째는 자유분방하다고 소개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우리 부부를 떠나더라도 엄마가 해 준 음식을 잊지 못해 찾아 올 것”이라며 “음식은 엄마와 아이를 연결해 주는 살아있는 끈이자 추억거리”라고 강조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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