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병선/‘강한 정부’의 아이러니

  • 입력 2003년 6월 1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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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구상과 전략이 새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요약한다면 그의 개혁 목표는 ‘국가 개조’이고, 주도세력을 형성해 개혁을 추진할 것이며, 어떠한 비판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은 내가 평가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국민은 누구나 이상적 사회관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권력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이상적 사회관을 강요하려 한다면,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선거과정에서는 물론 그간 쓰지 않던 ‘국가 개조’라는 말이 등장한 이면에는 자신의 국정운영방식과 개혁 방향에 대한 차가운 평가를 의식한 반감이 숨어 있다. 그러나 ‘국가 개조’는 안 된다.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20세기의 지성 칼 포퍼는 “이상주의자는 전면적 개혁을 추구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도적 수단으로 사회를 변혁하려 할 뿐만 아니라, 필경 자신의 이상적 사회관에 맞추어 인간을 개조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갈파했다. 노 대통령이 “근본적 개혁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개혁하는 문화개혁이다”라고 말한 뜻도 이것이다.

▼‘국가 개조’ 위험한 발상 ▼

‘코드가 맞느니 맞지 않느니’ 하는 이 정부의 유행어는 정치적 선호의 차이, 이념의 경쟁 차원을 넘어서, 이제 자기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상대편에게 적개심을 표출하는 차원으로 치닫고 있다. 아무리 국가 개조가 시급하기로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일반 공무원들에게 어느 줄에 서겠느냐고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출범 100여일 만에 이런 반자유적 표현들이 등장하게 된 이면에는 최근 일련의 집단행동과 정부 대응에 대한 판이한 평가가 놓여 있다. 국민이 대체로 “법치가 실종되었다”거나 “정책이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면,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새 질서가 자리잡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양편의 평가 모두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우리 사회의 집단행동은 지난 수십년간 정부가 경제사회를 거대한 조직으로 보고, 따라서 기획하고 통제해야만 할 대상으로 여겨, 자의적으로 간섭하고 규제함으로써 차별과 특혜를 양산해낸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구분이 없는 국가, 이런 구분의 기준인 ‘법의 지배’ 원칙과 시장경제의 원리를 무시하는 국가, 일시적인 정치적 편의를 위해 서슴없이 원칙을 희생시키는 국가, 이런 국가의 정부가 무슨 수로 번번이 극한투쟁을 외치고 나서는 집단들의 요구와 압력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철도민영화 유보 이후 조흥은행이, 화물연대 사태 수습 이후 버스 택시업계가 똑같은 요구를 들고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강하다고 알아온 정부가 되레 형편없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뿌리 깊은 원인에 천착해야만 한다. ‘강한 정부의 아이러니’를 발견해야 한다.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권위주의로 회귀할 수는 없고 보면, 우리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확실히 ▼

지식인, 언론, 국민도 ‘생떼’를 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악습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강력한 대응을 주문만 할 일이 아니다. 무제한적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기고도 태연자약할 수 있는 과도한 권력을 정부의 손아귀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확실히 해야 한다.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 시장에 있다면서 개입과 규제를 합리화해 온 정부,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는커녕 그 책임을 시장에 뒤집어씌우면서 끝없이 개입을 확대시켜 온 정부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한다. 오죽하면 단속에 시달리다 못한 부동산중개업자들이 투기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공개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우리 말고 어느 나라에 있으랴.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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