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아닙니다 아니고요'

  • 입력 2003년 6월 16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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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다. 집권 초기의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인지는 내가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변화를 선택해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변화는 시대적 요구였고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은 시대의 요구를 읽었다. 패배한 한나라당이 뒤늦게 “선거에 진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졌다”고 자탄(自歎)한 것은 옳은 분석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승리는 ‘절반의 승리’였다. 그래서 국민통합은 새 정부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다.

변화와 개혁은 그 과정에서 종종 국민통합을 거스를 수 있다. 명분으로서의 개혁에는 누구나 찬성할지라도 그에 따르는 개별적 이해상충에는 모두가 민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개혁을 요구하는 정당한 목소리든, 집단이기의 자위적(自衛的) 행태이든 세상은 한동안 시끄럽기 마련이다.

▼‘코드’로 국민통합 되는가 ▼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세상은 내내 시끄럽다. 새 권력과 국정시스템이 채 정착되지 못한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다. 좀 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데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전제는 원칙에 바탕을 둔 통합의 리더십이다. 원칙은 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려면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법치(法治)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 정부는 법치에서 흔들렸다.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도 좋지만 그 근본은 법치여야 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두산중공업 파업, 화물연대 운송거부에 이어 전교조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해당사자의 한쪽 편을 들거나 오락가락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친(親)노조 성향이어서 그렇다느니, 지지세력 편을 든다느니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래서는 갈등을 미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쌍방의 동의를 거친 통합을 이뤄낼 수는 없다. 전교조 문제에서처럼 오락가락해서는 통합은커녕 갈등을 부풀릴 뿐이다.

물론 초기단계인 노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법으로만 풀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조정과 설득,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조정과 설득, 통합에는 가치중립의 중간자적 역할이 필요하다. 일방의 ‘코드’가 작용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될 리 없다. 지금은 독재-반(反)독재의 이분구도 시대가 아니다. 성장과 분배를 딱 가를 수도 없으며, 이념의 잣대로 내편 네편을 가르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현 권력핵심이 여전히 비주류의 피해의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나친 피해의식은 일부 언론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빅3 신문’이 정부를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언론의 과장 또는 편파보도가 전혀 없었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권력과 언론의 정상적 긴장관계에서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든 있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언론이 흔들어도 꿋꿋이 간다”고 하는 것은 감정적 대응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내가 못 살아 못 살아”▼

최근 나라가 시끄러운 한가운데에는 늘 ‘대통령의 말’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다변(多辯)은 국정의 불안정성을 부각시킨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발언에 갖가지 해석과 구구한 해명이 뒤따라서야 국정이 안정될 리 없다.

“각 부처 내에 공식, 비공식 개혁주체 세력을 만들겠다”는 발언을 보자. 공직사회가 술렁이자 청와대는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무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아예 “나한테 줄 한번 서 봐라”고 했으니 ‘친위대’ 얘기가 나오고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부랴부랴 대통령 말씀(북핵 관련 대화 이외 방법 거부 시사)을 잘못 전달했다고 나서는가 하면, 여당 대표가 대통령 발언(공산당 허용)을 두고 “내가 못 살아, 못 살아”하는 판에 국정혼선 탓을 언론에 돌려서야 되겠는가. 이래서는 ‘아닙니다, 아니고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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