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백선기/언론과 바보 논쟁

  • 입력 2003년 6월 15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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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3월29일 노무현 대통령) ‘언론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 없이 손상하고 있다’(5월31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언론이 권력화되어 세상을 조종하는 한 정치 개혁은 말짱 황이다’(6월11일 명계남 전 노사모 대표). 노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사들의 언론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언급들이다. 일부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과 적개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들 언론과는 투쟁도 불사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현 정권의 이 같은 언론관에 대해 한나라당의 강성구 의원이 존 밀러의 책 ‘바보는 항상 남의 탓만 한다’를 빗대어 비판하고 나섰다. 강 의원은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 ‘언론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 언론을 제압하려는 것은 경찰언론식 사고방식이다’라며 현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우리 사회 여러 세력들의 언론관은 이토록 상대적이며 대립적이고 갈등 지향적이다. 한 쪽은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도 특정 언론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다른 쪽은 그와 같은 인식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사사건건 서로 대립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언론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 채 언론을 자신의 이해관계 속에서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월터 리프먼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이 ‘사회의 주요 현상에 대해 항상 비판하며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언론이 항상 비판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론매체들이 현 정권과의 관계에 따라 ‘우호적’ ‘비우호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구나 한 국가의 통치권자라면 언론매체가 자신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동등하게 배려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먼저 ‘우군(友軍) 대 적군(敵軍)’ 식으로 편 가르기를 하여 사회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언론을 어떻게 ‘우군’과 ‘적군’으로 구분하여 대하려 하는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근 한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될 각오도 준비도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무심코 듣고 지나쳐 버릴 말이 아닌 것 같다.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준비가 안 돼’ 일을 잘못하면서 그 원인을 언론에 돌리려 한다면 국민은 그런 ‘남의 탓’ 변명에 곧 식상해 할 것이다.

백선기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언론학baek9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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