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나성엽/성공스토리에 손벌리는 사람들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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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기업’ 시리즈 2편에 디지털 도어록 업체 ‘아이레보’ 얘기가 10일 지면에 실렸습니다. 암호화 기술로 투자를 받으려고 전전하다가, 결국은 암호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도어록 샘플을 발전시켜 대박을 터뜨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실린 날부터 이 회사에는 각종 사회단체에서 후원금을 좀 달라는 전화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장 집으로도 전화가 걸려온답니다.

회사 측은 “기사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면서도 뜻밖의 상황에 대해 당황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기사 쓰기가 겁날 때가 이럴 때입니다. ‘신데렐라처럼 우뚝 섰다’는 유의 기사가 나가면 어김없이 후원금을 달라는 단체가 기사의 주인공에게 들러붙고, 기자와의 친분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물품구입을 강요합니다.

제가 지면 사정 때문에 미처 쓰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찍 결혼한 하재홍 사장이 있는 돈 다 퍼부어 회사를 만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술을 들고 다니며 멸시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투자를 받은 뒤에도 제품이 팔리지 않아 3년간 부인과 자식에게 돈 한 푼 못 갖다 준 시절의 곡진한 이야기입니다. 100명이 창업하면 1, 2명 성공하는 냉혹한 비즈니스 환경. 밤잠을 설치며 회사를 겨우 궤도에 올려놓았더니 주위 사람들이 ‘공으로 먹자’고 달려들 때 성공한 창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기업이 번 돈은 공돈이 아닙니다. 창업자의 돈도 아닙니다. 주주의 재산이요, 직원들 임금이고, 공장을 돌릴 기업의 ‘혈액’입니다. 사장은 회사의 임금 테이블에 따라 월급을 받으며 ‘대표이사’ 직을 맡은 사람입니다. 주총에서는 대주주이지만, 대표이사 일을 할 때는 기업에 고용된 사람일 뿐이지요. 가끔씩 이를 혼동하는 창업자도 있지만요.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질기게 노력해 성공한 기업들이 일할 맛 떨어지게 하는 일이, 사소한 일이라도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정도 일 가지고 볼멘 소리 할 거면 아예 기업할 생각 말아야 한다고요?

나성엽 경제부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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