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반병희/외국계 금융자본의 정체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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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어줄 수호천사인가, 아니면 그저 투기자본일 뿐인가.

펀드성 외국계 금융 자본이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실기업에 들어가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보면 ‘역시’ 하는 찬탄사가 터져 나온다. 건실한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간섭만 일삼다 해당 기업을 망가뜨린 채 차익만 챙겨 빠져나갈 때는 전형적인 투기꾼 모습이다.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자산운용’이 지난주 최태원(崔泰源) SK㈜ 회장과 손길승(孫吉丞) SK그룹 회장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다. 최 회장이 내놓은 SK글로벌 지원안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는 것이다. 헤르메스자산운용은 SK㈜의 주식 0.7%를 갖고 있다.

SK㈜의 또 다른 해외 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도 수시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도 “자본의 국적은 큰 문제가 안 되며 한국에서 고용을 얼마나 늘리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해 정부로서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자세다.

옳은 얘기다. 당연히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한국 기업이 주주중심 경영, 경영합리화, 지배구조 개선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기까지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들이었기에 그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도 최근 보이고 있는 행태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과거 이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라. 그렇지 않으면 주식을 모두 팔겠다’고 요구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의 주가는 떨어졌다. ‘시장의 감시’가 먹혔다.

요즘은 ‘지배구조를 바꿔라. 이는 대주주의 당연한 요구다. 주식을 팔지 말지는 말해 줄 수 없다’라는 식의 ‘명분과 당위’로 밀어붙이고 있다. 뜯어보면 경영진과 주주,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외이사와 상임이사, 기업과 투자은행 등 이익주체들을 시스템적으로 갈라 세워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은 건전한 시장경제 확립에 좋은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기업은 기술력, 지배구조, 노사관계, 대외경쟁력 등 각각의 생산요소를 임의로 골라 짜 맞추어 생기는 ‘조합’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돼온 유기체다. 회계투명성과 지배구조 같은 소프트웨어도 기업을 일궈 발전시켜온 구성원들의 혼(魂)과 문화를 담아 낼 때에만 제대로 작동된다. 중국에서 미국식 지배구조의 경영형태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다 실패를 거듭했던 타이거펀드와 USA아시아펀드 등이 이를 입증한다.

더구나 그 자본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급격히 세(勢)를 확산시키고 있는 ‘신중상주의(New Mercan-tilism)’의 전도사적 성격을 띠었다면 왜 한국시장을 자기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려 하는지 정부 기업 등 시장 참여자 모두는 그 배경을 헤아려야 한다. 백인이 되고 싶어 흰 피부를 이식하다 얼굴을 망친 마이클 잭슨이 되지 않으려면….

반병희 경제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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