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터널]“터널은 교통사고의 블랙홀”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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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도로공사가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4.6km)에서 실시한 모의 화재 진화 훈련.-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한국도로공사가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4.6km)에서 실시한 모의 화재 진화 훈련.-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서울 내부순환도로 홍지문터널에서 버스가 전복되는 등 터널 교통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교통 전문가들은 일반 도로보다 터널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터널 안에 들어서면 교통 조건이나 운전자의 감각이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황상호 수석연구원은 “운전할 때 얻는 정보의 85∼90%는 시각에서 오는데 터널 안에 들어서면 시각 정보가 크게 왜곡된다”고 밝혔다. 우선 차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고 차간 거리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게 된다. 터널 안은 똑같은 벽이 계속 이어질 뿐 거리나 속도감을 알 수 있는 주변 물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빛의 양을 조절하는 동공도 변화를 재빨리 따라잡지 못한다. 동공은 어두운 터널 안에 들어서면 더 많이 열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 특히 사람의 동공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진입할 때 필요한 적응시간이 반대의 경우보다 5배나 길다. 황 연구원은 “선글라스를 끼거나 진하게 선팅을 한 차를 몰고 터널에 진입하면 주위나 계기판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당황하다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터널 벽을 타고 쭉 이어진 조명도 운전자에게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경원전문대 박형주 교수(소방학과)는 “터널 안에 설치된 조명을 계속 보다보면 눈이 착시를 일으켜 가까이 있는 차를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터널 안에서는 공명 현상이 일어나 약간 멍해지면서 기분이 다소 들뜬 상태가 되는데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 된다. 터널 안이 일종의 답답한 폐쇄 공간이어서 빨리 빠져나오려는 심리 때문에 과속을 하게 되는 것도 많은 운전자들이 경험한 일이다.

터널 안은 일반 도로와 비교해 물리적 상태도 달라진다. 터널 전문가인 유신코퍼레이션 문상조 전무는 “터널 안은 도로보다 온도가 높아 내부에 안개가 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터널 입구에는 얇은 얼음막이 생기기도 한다. 눈이 녹거나 터널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물방울이 맺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동고속도로 등 일부 터널 입구 바닥에는 열선이 깔려 있어 눈과 얼음을 녹이기도 한다. 거꾸로 따뜻한 터널 안은 습기가 적어 브레이크를 밟아도 미끄러지는 거리가 더 길다.

터널 안에 부는 바람인 ‘교통풍’도 운전에 지장을 준다. 터널은 좁은 통로인 데다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지나가므로 시속 20km에 이르는 바람이 분다. 터널에서 가속할 때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것은 교통풍이 차를 밀어주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서 화재 사고가 나면 교통풍 때문에 처음에는 불길이 뒤로 가지 않지만 차가 멈추면서 바람도 멈추고 1∼2분 만에 불길이 역류해 사람들을 덮친다.

이런 위험들 때문에 터널 안에는 교통사고와 화재를 막을 수 있는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형광물질로 차선 표지판을 만들거나 차선에 요철을 넣기도 한다. 문 전무는 “유럽에서는 긴 터널 안에서 음악을 틀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불길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제트 팬을 천장에 설치하거나 다양한 열감지 센서와 스프링클러, 물벽 같은 방재시설도 설치돼 있다. 운전자가 도망칠 수 있는 대피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터널은 관리가 소홀해 표지판과 전등에 먼지가 쌓이는 등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황 연구원은 “아무리 첨단 시설을 설치해도 긴 터널에서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터널에 들어서면 속도를 줄이고 절대 차로를 변경하지 말고 전조등과 미등을 켜고 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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