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선영/‘유전자 치료’ 一喜一悲 말자

  • 입력 2003년 6월 1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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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란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해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기술과 소재를 한꺼번에 일컫는 표현이다. 화학요법에서 화학물질이 치료제로 쓰이는 것처럼, 유전자가 약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는 여느 신약개발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대와 실망이 서로 엇갈리며 발전하고 있다.

치료 목적으로 사람에게 유전자를 집어넣은 첫 번째 임상시험은 199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의해 수행됐는데, ADA라는 유전자의 고장으로 인해 극심한 면역결핍증이 생기는 질환에 적용되었다. 이처럼 유전자 치료 연구 초기에는 유전병에 제한적으로 사용돼오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암, 관절염, 혈관질환, 에이즈 등 각종 질환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에서 핵심 재료는 물론 유전자 그 자체다. 그러나 유전자가 없어서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혈우병 환자들에게 특정 유전자를 넣어 주면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인체에 이러한 유전자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전자 치료의 성공적인 산업화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유전자 전달체가 개발돼야 한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달체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 자체의 독성이나 증식능력을 제거하고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를 심어주면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세포들에 유전자를 매우 효율적으로 전달해준다. 목적이 유전자 전달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백신과 기본 원리가 비슷하다. 그 외에도 DNA를 조작해 그 자체를 인체에 주사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는 여느 신약 개발과 마찬가지로 부(浮)와 침(沈)을 거듭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초기에 유전자 치료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해 미국에서는 수많은 회사들이 설립됐다. 그 후 5년 동안 진행이 더뎌지자 투자자들은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1998년 혈관질환에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자 과학계와 경제계는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썩어가던 다리를 자를 필요가 없게 되고, 조금만 걸어도 헐떡이던 관상동맥질환자가 등산까지 하게 돼 전 세계 주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1999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에서 임상시험 도중 과량의 아데노바이러스를 받은 18세 소년이 유전자 주입 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계와 투자업계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전 세계를 다시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2000년 4월 프랑스의 한 그룹이 발표한 면역결핍증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였다. 이 질환은 대부분 생후 1년 내에 사망하는 불치병인데, 출생 직후 유전자를 주입받은 아기들이 4년이 지나서도 건강하게 생활하게 된 것이다. 죽을 사람을 살렸으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었다. 과학계와 언론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질투의 신은 생사(生死) 결정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과학자들에게 또다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2002년 10월 이 프랑스 그룹이 수행한 임상시험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다. 현재까지 총 11명의 어린이가 유전자 치료를 받았는데 그중 2명에게서 백혈병이 발견됐다. 유전자가 염색체에 삽입되어 들어가면서 다른 유전자를 건드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 학계는 2년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첨단신약 개발 도중 1∼2개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단일 제품이 아니라 50여 가지 질환에 대해 100여개 이상의 서로 다른 약품들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제품은 성과가 매우 우수하고, 어느 후보물질은 부작용을 보이기도 한다. 유전자 치료제 분야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존재하기에 우리에게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유전자 치료제가 21세기 신약으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 첨단 분야에서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투자하면서 좋은 연구를 수행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김선영서울대 교수·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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