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조희문/스크린 쿼터가 필요한가

  • 입력 2003년 6월 1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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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인 스크린쿼터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한미투자협정(BIT) 논의과정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다시 떠올랐고, 정부 부처간 입장은 충돌로 치닫는 중이다. ‘한국영화 보호를 위한 마지막 장치이자 유일한 수단’이라는 주장과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격렬하게 엇갈린다.

▼부쩍 큰 우리영화 자생력 충분 ▼

스크린쿼터제는 정말로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 1988년, 영화제작 및 수입자유화 조치에 따라 외국영화 직배가 시작됐을 때 영화계는 긴박한 위기감에 휩싸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자라기 시작했다. 관객이 원하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절박하게 고민하고 외국영화와의 경쟁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했던 데서 생긴 현상이었다. 일본영화 개방 때의 우려와 반발도 결국 기우(杞憂)로 끝났다. 스크린쿼터제가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했고 여전히 유용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대와 바람일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그간의 수많은 논란과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증명하고 있다. ‘쉬리’가 흥행 돌풍을 일으킨 1999년 이전의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빈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영화의 약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기획자, 제작자,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시설로 서비스를 높인 극장, 한국영화를 지지하는 관객 등 영화계 각 분야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이지 스크린쿼터제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62년 ‘영화법’ 제정 이후의 영화정책은 한국영화 의무 제작, 외국영화 수입 제한을 통한 극도의 통제로 일관했다. 유신시대의 이른바 ‘새마을영화’나 ‘반공영화’ ‘국책영화’들은 권력이 영화를 선전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 사례다. 이 과정에서 급속하게 늘어난 한국영화를 일정량 이상 상영케 할 필요가 생겼고, 스크린쿼터제는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장치였다. 1966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한국영화 상영기준은 ‘연간 6편 이상, 연간 90일 이상’이었다.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2 이상’(최고 146일)으로 확대된 지금의 규정은 1985년부터 시행됐다. 연간 최고 146일까지로 이 제도가 강화된 것은 당시 외국영화 수입자유화 조치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가 명분으로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영화를 통제하면서 권력의 선전 수단으로까지 이용하다 불가피하게 시장개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보호’를 극장측에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작자와 극장업계의 이해관계가 달랐던 만큼 시행 첫 단계부터 스크린쿼터제는 틈만 나면 ‘줄이자’ ‘안 된다’로 반목 갈등하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나마 외국영화 수입자유화 이전까지는 영화사가 제작과 수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제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강하지 않았다. 제작과 수입이 뚜렷하게 분리되는 1988년 이후 이 문제가 민감하고 격렬해진 이유는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수입시장에서 밀려나면서였다. 더 이상 외국영화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영화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유지=애국’ 이분법 경계를 ▼

미국영화의 독점력이 예전 같지 않고 한국영화의 저변이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스크린쿼터제 논쟁은 공허하다. 우리가 경계할 일은 스크린쿼터제 유지 여부를 애국심의 척도처럼 연결짓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다 해도 그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무조건 지키는 것만이 최선이며, 그 밖의 모든 주장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면 스크린쿼터제는 제도로서의 효용 여부를 떠나 선동적 명분의 빌미로 바뀔 수도 있다. BIT에서 스크린쿼터제가 장애물이 된다는 논리도 무리가 있지만, 그것이 한국영화 보호와 진흥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지나친 과장이다.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의 보호와 진흥을 위한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의 궁극 목표가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영화는 이제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김경미기자 couple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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