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의 길목에서'…인권변호사의 세상 읽기

  • 입력 2003년 6월 13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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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길목에서/한승헌 지음/526쪽 1만8000원 나남출판

승소와 패소의 횟수로 변호사의 능력을 따진다면 한승헌 변호사(69)는 아마 ‘꼴찌’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변론을 맡은 피고인치고 실형을 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패소를 도맡아 하던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1960∼80년대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던 그는 동백림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동아방송 보도필화사건, 이병린 변호사 구속사건, 보도지침 폭로사건, 문익환 목사, 임수경씨, 작가 황석영 방북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들을 주로 맡았다. 그의 패소는 능력과 관계없이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그 역시 군사정권의 괘씸죄에 걸려 1975년 ‘여성동아 필화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2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장을 맡았다가 지금은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 변호사로 ‘저작권’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최근 몇 년간 각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 90여편을 모아 책을 냈다.

그는 서문에서 “독재에 반대하는 글이면 곧 ‘정론’이 되던 시절과는 달라서 지금은 다양한 의견과 주체적 선택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시대이다. ‘참으로 지당하다’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정론을 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설픈 글쓰기나마 멈추지 않는 것은 그냥 뒷짐지고 세상구경만 한 뒤 엄습할 자책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위트가 넘친다. 그리고 ‘역사의 길목’마다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한 삶에서 느껴지는 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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