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현기증'…사랑은 두렵고도 달콤한 현기증

  • 입력 2003년 6월 13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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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은 신파와 통속뿐인가. 갈등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진실한 사랑인가.’ 소설가 고은주는 ‘사랑’이라는 문제를 던진다. 사진제공 이룸
‘사랑의 본질은 신파와 통속뿐인가. 갈등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진실한 사랑인가.’ 소설가 고은주는 ‘사랑’이라는 문제를 던진다. 사진제공 이룸
◇현기증/고은주 지음/256쪽 8500원 이룸

장편소설 ‘현기증’은 사랑에 대한 태도,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가는, 깨닫는, 발견하는 과정. 무언가의 존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흔적’(작가의 말)이 점묘화처럼 그려진다. 과정은 곧 사랑에 대한 관조이며 그 흔적은 깨달음을 낳는다.

잡지사 기자인 ‘나’(오민영)는 대학동창인 소설가 신유진의 부고를 접한다. 뜻밖의 비보와 함께 유진의 오빠에게서 건네받은 종이 한 장. 김서인이란 사람이 쓴, 그러나 유진은 끝내 보지 못한 e메일이었다.

유진의 웹하드를 열어 보게 된 ‘나’는 김서인이 유진에게 보낸 24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들은 많은 부분의 조각이 빠져 있는 모자이크 그림 같다.

발신인 김서인은 ‘회고적인 것은 퇴행적’이라고 믿는 냉정한 인물. 그의 냉정함 안에 감추어진 것은, 내면의 풍랑을 수면 밖에 드러내지 않는 묘한 행동양식과 사랑의 귀결에 대한 두려움.

‘나’는 인터뷰를 명목으로 어렵게 그를 만나지만 그는 신유진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유진에게 홈페이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우연히 알게 된다. 홈페이지 운영자 로그인에 성공한 ‘나’는 유진이 김서인과 만난 날부터 죽기 직전까지 이따금씩 써내려간 일기를 찾아낸다.

편지와 일기를 가지게 된 ‘나’는 유진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났던 때를 회상한다. 현실에서 ‘나’는 김서인을 인터뷰한다. 기록으로만 남은 두 사람의 사랑을 들여다보며 ‘나’의 사랑에 대해 숙고한다.

김서인은 연애 감정만큼 소모적인 것은 없다고 한다. 유진은 그 집중, 그 희열, 그 격동이 소모에 불과하다면 우리 인생에 소모가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하고 반문한다.

‘나’의 애인 준오는 말한다. “연애도 엄연한 생활의 한 부분인데 뭐 그렇게 대단한 게 있겠니? 생활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데 말이야.” ‘나’에게 준오와의 관계는 괜찮고 무난한, 그저 습관과 관습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또…, ‘나’의 직장후배 은조, 현실 앞에서, 감정과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며 사랑을 시험받는다. 유부남을 사랑하는 사촌언니 희수, 자신의 욕망을 눌러가며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 난 항상 안전한 삶을 꿈꾸었어. …지금도 서로 멀리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절실한…. 누구도 타인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순 없는 게 아닐까?”

‘나’는 깨닫는다. ‘결국,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찾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사랑은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잠시 스쳐 가지만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 어떤 이는 자주 경험하지만 어떤 이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또 어떤 이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 ‘현기증’은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이다.

소설가 고은주(36)는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 이력을 접은 뒤 단편 ‘떠오르는 섬’으로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해 등단했으며 1999년 장편 ‘아름다운 여름’으로 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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