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밥그릇 챙기기

  • 입력 2003년 6월 12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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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사사건건 부닥치는 여야가 신통하게도 의견이 쉽게 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국회의원 세비를 올리거나 보좌요원 수를 늘리는 등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는 일에서 그렇다.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의원들은 이럴 때마다 슬그머니 일을 해치운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야는 국회에서 근무하는 정당 출신 정책 연구위원 수를 현재의 32명에서 70명으로 늘리기로 전격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1∼4급 대우인 이들의 평균연봉이 6000만원 정도이니까 연간 22억원 이상의 추가비용이 국민세금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여야는 국회와 정당, 의원의 정책기능 강화를 정책연구위원 증원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 비할 때 우리 국회의 의정활동 보좌요원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의 경우 상원의원은 40명, 하원의원은 20명 정도의 개인 보좌요원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상임위 1400여명, 의회조사국 700여명, 법제실 20여명, 회계검사원 4700여명 등이 의원들을 돕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의원들은 개인당 6명의 보좌진이 있고 국회 차원에서는 상임위 270여명, 법제실 40여명, 예산정책국 40여명, 도서관 입법조사연구관 30여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수치만 갖고 우리 국회의원에 대한 지원시스템이 열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턱도 없는 소리다. 미국의 의원 보좌요원들은 그 규모에 걸맞은 충실한 활동으로 국회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진은 지역구 관리 등 주로 의원 개인 일에 활용되고 있어 국회의 기능향상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정책연구위원은 입법보좌보다 정당 업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籍)은 국회에 두고 몸은 정당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들은 때만 되면 ‘사람타령’이다.

▷게다가 지금은 국회가 제 할일을 못해 국민의 눈총이 한없이 따가운 때다. 여야가 신당싸움 당권경쟁 등에 매달려 의정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고 이 바람에 752건의 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그제 국회 본회의는 55명(재적의원 5분의 1)인 의사정족수도 채우지 못해 50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이 와중에 무엇이 그렇게 급하다고 정책연구위원 증원에는 선뜻 합의했으니 ‘나랏돈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의원들이 제 할일을 다하고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한다면야 사람 몇 명 더 쓰는 게 무슨 문제인가. 공부는 하지 않고 학용품만 사 내라는 자식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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