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드 주한美대사 "여중생사망 美軍재배치에 영향"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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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가 9일 미 대사관 집무실에서 한미 현안에 대한 인터뷰를 갖고 있다.-변영욱기자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가 9일 미 대사관 집무실에서 한미 현안에 대한 인터뷰를 갖고 있다.-변영욱기자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 대사는 9일 미국은 북한에 대한 봉쇄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지만 북한의 마약 밀반입 등 불법 활동을 저지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버드 대사는 이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불법 활동을 저지하는 것은 법 집행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미국은 대북 제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선제공격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지난해 6월 13일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 이후 한미 관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이에 대한 우려도 많은데….

“우리 모두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면서 아직도 매우 비통해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한다. 1주기를 맞아 숨진 여중생들을 추모하고, 한미 관계의 중요성과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사건으로 반미(反美) 움직임이 거세졌다는 해석이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나왔지만 일부는 반미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나왔다고 본다. 지난주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조사 결과 54%의 한국인 응답자가 미국에 비우호적이라고 답했다. 내가 과거에 근무했던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미국에 대한 태도가 더 부정적인 것 같다. 반면 미국인에 대해서는 74%가 우호적이라고 답했다. 한국과 미국이 중요한 동맹국이자 교역 파트너임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격차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줄이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한국인들이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을 지지하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미 양측이 여중생 치사사건에 대응하는 데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나.

“물론이다. 양측 모두가 더 잘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우리는 궤도 차량을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통해 수송하고, 대규모 군 또는 장비 이동은 72시간 전 한국군에 사전 고지하도록 하는 등 안전조치를 강화했다.”

―한국인들은 미군에 대한 무죄판결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추가로 취할 조치가 남아 있나.

“미국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은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인다고 말했고 나 역시 책임을 공유한다. 그러나 군사 재판소의 법적 절차에 따라 두 미군은 형사상 과실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미 정부간 현안에 대한 의견차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양국간 큰 의견차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양국 모두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다자간 외교에 근거해 해결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는 한국 정부의 경제협력과 인적교류 증대 정책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화해, 궁극적으로 통일에 기여한다고 본다. 양국은 또 북한이 외교적 접근에 반응하지 않으면 어떤 ‘추가 조치’를 고려할지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추가 조치’로서 제재를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미국은 대북 제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핵심 당사국들이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주한미군 재배치가 촉진된 것은 아닌가.

“주한미군 재배치는 전 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이다. 무기 현대화와 신속 대응력 제고를 통해 미군의 군사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군사 작전을 통해 그 필요성을 알게 됐다. 여중생 치사사건도 영향을 줬다. 군과 시설, 장비를 훈련 장소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옮겨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훈련 도중 주변 민간인에게 위험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더 이상 지난해와 같이 훈련 도중 어린 소녀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 내 반한(反韓) 감정 때문에 배치가 촉진된 것 아닌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일부 한국인들이 미군 부대 및 미국 대사관에 강제로 진입을 시도하고 국기를 찢는 일이나, 레스토랑의 미군 출입금지 표시를 보고 혼란스러워했고 일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인들은 대다수 한국인들이 양국 군사 동맹이 계속되고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LA 타임스는 최근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는데….

“그 또한 터무니없는 얘기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외교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 대북 조치는 동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실시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해 왔다. 미군을 재배치한 것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미군 시설이 한국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한국 방어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위치로 이전하기를 희망한다.”

―최근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마약 수출에 대해 국제적 봉쇄조치를 논의하기로 했다는데….

“G8 공동성명을 과대 해석한 것 같다. G8 성명은 북한과 같은 나라가 위험한 무기, 대량살상무기, 핵물질을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면 봉쇄가 가능하다는 뜻인가.

“미래에 발생할 일에 대해 추측하고 싶지 않다. 대량살상무기같이 위험한 무기 수출을 저지하는 데는 세계 모든 국가의 이해가 걸려 있다. 마약 밀매, 위조지폐 등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법이 마련돼 있으며, 국제사회는 함께 협력해 확산금지 노력을 강화할 방법을 논의할 것이다.”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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