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피의 다이아몬드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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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앙골라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들이라는 것 말고도 이들 나라엔 공통점이 있다. 내전에 시달린다는 점과 천혜의 자원이 풍부한 국가라는 점이다. 땅만 파면 석유 천연가스 다이아몬드가 쏟아지는 나라들이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 땅에서 서로 싸우는 걸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 있다. 이름 하여 ‘자연의 저주’다.

▷1960년대 이래 세계의 내전에 관한 세계은행 조사를 진행한 폴 콜리에 옥스퍼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나라 경제를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가일수록 가난하고, 부패한 독재자를 갖기 쉬우며, 내전에 휩쓸리기 십상이라고 했다.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백성들을 배불리면 좋으련만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애써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는 ‘심심한 지도자’는 부패와 손을 잡고 저 혼자 부자가 돼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다이아몬드로는 돈을 만들기가 쉽다. 석유만 해도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채굴해 팔 수 있으나 다이아몬드 광산은 첨단 장비 없이도 얼마든지 파내서 밀거래하는 것이 가능한 까닭이다. 이를 눈뜨고 봐줄 수 없는 반대파는 무기를 들고 일어서게 마련이다. 반군들이 무기를 사들이는 비용 역시 다이아몬드를 내다 팔거나 다이아몬드 밀거래자들로부터 돈을 뜯어 충당한다.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 조직이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테러자금을 운반해 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의 다이아몬드(Bloody Diamond)’. 불법 거래되는 다이아몬드엔 이 같은 섬뜩한 이름이 붙어 있다.

▷반군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쫓겨날 위기에 몰려 있는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대통령도 피의 다이아몬드와 관련이 깊다. 미국서 공부한 엘리트 출신이자 반군 지도자였던 그는 자기 나라에서 나는 다이아몬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나라 시에라리온 반군을 도와주는 대가로 다이아몬드를 받아 챙겨 왔다. 반군이 이길 경우 그 나라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할 속셈이었음은 물론이다. 1999년 유엔에 총기와 다이아몬드 밀매 혐의로 고발되자 마치 천사처럼 흰옷을 차려입고 대중기도회에 나섰던 그도 이젠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 같다.

▷서구 전통에서 완전한 진실과 부패하지 않음의 상징으로, 특히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굳건히 해주는 상징물로 여겨져온 다이아몬드다. 그런데 아프리카 빈국들에는 풍요와 기쁨 대신 분쟁과 부패를 가져온 피의 저주가 되고 말았다. 리더십과 교육, 법과 제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천혜의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도 차라리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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