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80>不 動 心(부동심)

  • 입력 2003년 6월 10일 17시 44분


코멘트
不 動 心(부동심)

動-움직일 동 誘-꾈 유 眩-아찔할 현

腕-팔뚝 안 浩-넓을 호 葉-잎 엽

孔子(공자)는 나이 서른에 自立(자립)하여 10년이 지난 마흔에는 외부의 어떠한 誘惑(유혹)에도 眩惑(현혹)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而立(이립), 不惑(불혹)은 각기 나이 ‘서른’과 ‘마흔’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孔子가 말한 不惑의 상태를 孟子(맹자)는 不動心이라고 했다. 외부의 물질적, 정신적인 誘惑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孟子의 弟子(제자) 중에 公孫丑(공손추)가 있는데 가끔 엉뚱한 질문을 잘 했다. 그는 스승의 인격이 훌륭한 것쯤이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외부의 誘惑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 않을까 궁금하여 불쑥 이렇게 물었다.

‘만약 선생님께서 齊(제)나라의 제상이 되어 道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면 마음이 움직이지(動心) 않으실까요?’

그러나 孟子의 대답은 단호했다.

‘천만에, 내 나이 이미 마흔이니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없네.’(不動心)

孟子에 의하면 不動心의 비결은 勇氣(용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勇氣라고 하면 대체로 물리적인, 곧 腕力(완력)에서 비롯되는 용기로 이해한다. 사실 그와 같은 勇氣를 가진 사람은 많다. 衛(위)의 孟賁(맹분)은 맨손으로 쇠뿔을 뽑을 만큼 勇力(용력)이 뛰어났으며 齊의 용사 北宮유(북궁유)는 송곳으로 눈을 찔러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 뿐인가. 孟施舍(맹시사)같은 이는 적과 싸울 때면 상대의 힘은 요량하지 않고 生死를 무릅쓰고 대적한다.

그러나 孟子는 말한다. 不動心에서 勇氣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외부적, 물리적인 勇氣가 아니라 내부적, 도덕적인 勇氣다. 다시 말해 血氣(혈기)의 勇氣보다는 道德(도덕)의 勇氣다. 그것은 비도덕적인 것을 배격하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勇氣를 뜻한다.

그 勇氣를 기르기 위해서는 氣를 잘 닦아야 하는데 孟子는 그것을 浩然之氣(호연지기)라고 했다. 그것은 행동하는 데 있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이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비도덕적인 것을 배격하고 도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勇氣라는 것이다.

결국 孟子가 말한 不動心은 내면적인 수양을 통해서 浩然之氣를 기름으로써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는 나이 마흔에 그런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凡人(범인)들은 어떤가. 誘惑의 바다에 떠 있는 動心의 一葉片舟(일엽편주)를 탄 것은 아닌지.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