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외교' 발언파문]"통치권 도전 사건" 대정부질문 중단

  • 입력 2003년 6월 9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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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오른쪽)이 9일 오후 경기 김포시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하는 버스 안에서 박희태 대표에게 자신의 ‘등신외교’ 발언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김포=국회사진기자단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오른쪽)이 9일 오후 경기 김포시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하는 버스 안에서 박희태 대표에게 자신의 ‘등신외교’ 발언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김포=국회사진기자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등신 외교’ ‘굴욕 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이번 방일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은 9일 오전 9시20분경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재진이 “‘등신 외교’라고 했느냐”고 묻자, 이 의장은 웃으며 “그렇다. 왜, 표현이 이상하냐”고 말해 단순한 실언(失言)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의 직후인 오전 10시경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파문을 우려한 듯 “방미에 이어 이번 방일도 굴욕적이었다는 국민감정이 있어 (이 의장이) 화가 나서 뜻하지 않게 나온 발언 같다”고 해명했다.

비슷한 시간에 이 의장의 발언 내용은 민주당 지도부에 보고됐다. 정대철(鄭大哲) 대표는 “반박 성명을 준비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실무진에 지시했다.

여권의 공식적 반박은 청와대에서 먼저 나왔다. 오전 11시반경 이해성(李海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춘추관에 나타나 이 의장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강한 어조로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는 민주당에도 영향을 줬다. 낮 12시반경 식사 중이던 정 대표와 정균환(鄭均桓) 총무에게 김원기(金元基) 고문 등 친노(親盧)파 의원들이 전화를 걸어 “의총을 소집해 한나라당과 이 의장을 강력히 성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촉구한 것.

이에 따라 오후 2시 민주당 의총이 소집됐지만 30여명만이 참석하자 의원 간담회로 대체됐다. 주류측이 대야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재정(李在禎) 의원은 “망언의 극치이고 국정수행에 대한 극렬한 방해행위이자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다. 법적 대응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흥분했고, 신기남(辛基南) 의원도 “노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의 의도적 폄하는 우리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가세했다.

정 총무가 “한나라당의 공식 사과가 있을 때까지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하지 말자”고 제의하자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당연하다. (한나라당이) 국가원수를 부인하는데 대정부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맞장구를 쳤다.

민주당 간담회 직후 이상배 의장이 성명서를 내고 “‘등신’은 경상도에선 흔히 쓰는 말이고, 정대철 대표 등도 야당 시절에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정권에 대해 ‘치안 등신’ ‘인사 등신’ ‘경제 등신’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여권의 강경기류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후 5시반 정 총무와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국회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으나 “한나라당의 공식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정 총무의 요구에 대해 이 총무가 “이미 이 의장이 개인적으로 유감 표명을 했다”며 거부해 결렬됐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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