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상을 거부했나. 마땅히 우승했어야 하는데 빼앗겼다고 생각했나.
“1등상을 수상한 세버린 폰 에커슈타인(25·독일)의 실력은 인정한다. 내가 아니면 에커슈타인이 1등상을 수상하게 될 걸로 1차 예선부터 줄곧 생각해 왔다. 문제는 그에 이어 2등을 수상한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관객도 납득을 못할 것이다.”
―이번 일로 세계 음악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나.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관객과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스베들로프가 6등에 머물자 수상을 포기한 일이 있다. 스캔들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항의의 뜻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상금은 얼마인가. 연주회 등 그 밖의 특전도 포기하는가.
“당연히 포기한다. 3등상 상금은 1만5000유로(약 2000만원)이다.”
―왜 1등뿐 아니라 2등까지 놓쳤다고 생각하는가.
“2등 수상자 셴웬유(16·중국)의 스승은 1등 수상자 에커슈타인의 전 스승이기도 한 칼 하인츠 케멀링(독일)이며, 그가 이번 심사위원단에 포함돼 있다. 말하기 유쾌하지 않지만,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벨기에 유력지인 ‘르 수아’는 ‘이제 고작 18세로 대음반사 EMI와 피아노계의 여제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후원을 받고 있는 임동혁에게 더 이상의 격려는 필요치 않았다’라고 보도해 이제 25세로 4년 뒤 참가연한(27세)에 걸리는 에커슈타인이 ‘동정표’를 샀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는데….
“1차 예선부터 벨기에 전 언론과 관객들은 최종 결과를 에커슈타인과 나의 대결로 예측하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현지 기자들도 인터뷰마다 ‘EMI에서 음반을 내고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아르헤리치의 후원까지 받고 있는 연주자가 왜 콩쿠르에 나왔느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에커슈타인의 연주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3등으로 밀린 이유까지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기자들의 말대로 이미 대가의 대열에 들어섰으면서 왜 또 콩쿠르에 나섰나. 이번 콩쿠르 참가로 실망이 많았는데….
“(웃음) 수상만이 콩쿠르 참가의 목적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유감없는 연주를 펼쳤고, 다른 참가자들도 수준이 매우 높았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행사였다.”
―쇼팽 국제콩쿠르(2005년)에는 참가할 것인가.
“틀림없이 참가할 것이다.”
한편 ‘르 수아’지는 콩쿠르 최종 결과를 보도하면서 우승자인 에커슈타인의 연주가 ‘아름답고 명확했다’고 평가하면서 그 이상의 분량을 할애해 임동혁의 연주가 ‘무한한 표현의 수단과 해석의 자유’를 갖추고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르 수아’는 뒤이어 2등상 수상자인 셴웬유의 연주에 대해 ‘아직 발전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해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의문을 표시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29년 벨기에 엘리자베스 왕비의 후원으로 시작됐으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쇼팽 국제콩쿠르와 함께 특히 피아노 부문에서는 ‘세계 양대 콩쿠르’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작곡 부문을 4년마다 번갈아 개최한다. 한국인으로는 바이올린 부문의 강동석씨(76년·3위), 피아노 부문의 백혜선(91년·4위) 박종화씨(95년·5위) 등이 입상했다. 피아노 부문이 열린 올해 대회는 5월 8일 개막됐으며 109명이 서류심사를 거쳐 참가했다. 이번 대회에 한국인으로는 박종경 손민수씨가 임군과 함께 결선에 진출했으나 최종 등위에는 들지 못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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