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일본국민과의 대화

  • 입력 2003년 6월 9일 00시 46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일본 방문 사흘째인 8일 민방인 TBS(도쿄방송)에 출연해 일본의 대학생, 주부, 농어민, 기업인, 직장인 등 100명과 1시간15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날 토론은 스튜디오에 모인 참석자들과 팩스와 인터넷을 통해 접수된 1300건의 질문 가운데 방송사가 고른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에서는 북한 핵, 과거사 문제 등 현안에 관한 질문 외에도 ‘김치가 사스(SARS) 예방에 효과적이냐’ ‘지금 일본 총리가 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일본 축구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느냐’ 등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북한은 우리(한국)보다 약하고, 일본보다는 훨씬 약하다. 전쟁은 미사일 몇 개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며 “너무 불안하게 생각하고 위기감을 가지면 잘못 충돌해서 큰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중국, 미국 지도자와 협력해 반드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또 남북통일이 10년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핵을 포기하게 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 되면 어느 때인가 통일이 된다. 통일은 천천히 돼도 좋다. 정치적 통일은 늦어져도 괜찮다”고 답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질문에 노 대통령은 “답변은 가슴 속에 묻어두겠다”며 직접적인 평가를 피했다. 대신 “취임을 앞두고 고이즈미 총리를 초청하려 했는데 신사참배를 해 취소 여부를 고심했다. 초청을 취소해서 지도자간에 감정이 생기면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번에도 북핵 문제를 협의하고 의기투합해야 하는데 과거 얘기를 들먹거리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우호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세 나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일본이 첫 번째인 것 같다”며 다음으로 중국 미국의 순으로 답했다. 노 대통령은 “일본은 가장 가깝고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밀접하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이 발전하면 한국 시장이 커지고 미국은 동북아 안정 세력으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노 대통령이 82년 요트를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요트 선생이었던 이노우에(井上)씨는 “20년 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시절이 기억난다”는 영상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7일 오후 영빈관을 직접 찾아온 이노우에씨와 20년 만에 재회했었다.

이날 토론은 ‘한국의 노 대통령과 솔직하게 직접 대화’라는 제목으로 오후 5시30분부터 6시45분까지 일본 전국에 녹화 방송됐다.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는 외국 국가지도자 중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주룽지(朱鎔基) 전 중국 총리가 출연한 적이 있으며 한국 대통령의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한편 스튜디오에 모인 100명 중 98명은 “앞으로 한일 관계는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날 프로그램 진행자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유명 앵커 지쿠시 데쓰야(筑紫哲也)가 맡았는데 그는 말미에 “(노 대통령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의미가 깊은 말이었다”고 평했다.

도쿄=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