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호르몬요법 '내 몸에 맞게'

  • 입력 2003년 6월 8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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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요법(HT)은 여성의 행복한 노후를 보장하는가? 갱년기 증세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판 불로초’로까지 불렸던 호르몬 요법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자 여성들의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여성호르몬 요법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미국에서만 30%의 약 복용자가 이를 중단했다는 보도다. 국내에서는 폐경 여성의 7∼8%에 해당하는 50여만명이 호르몬 요법을 쓰고 있다. 호르몬 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지난달 24일에서 28일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의회당에서 열린 제6차 유럽폐경학회에서 연구자들은 최신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이 같은 고민에 대해 ‘맞춤 치료’라는 해답을 내놓았다.》

▽호르몬 요법이란=폐경 후 여성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얼굴 홍조를 비롯해 뼈엉성증(골다공증) 수면다한증 우울증 기억력감퇴 등 소위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

호르몬 요법이란 폐경 여성들에게 여성호르몬을 인위적으로 투입함으로써 월경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두자는 것. 1960년대에는 에스트로겐만을 투여하다가 70년대 들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을 함께 투여하기 시작했다. 프로게스테론은 임신 중 자궁의 발육과 성장을 지배하는 호르몬이다.

▽무엇이 문제인가=호르몬 요법이 여론의 질타를 받기 시작한 것은 NIH의 발표로부터. ‘여성건강이니셔티브(WHI)’로 이름 붙여진 이 연구는 호르몬 요법이 △뼈엉성증이나 얼굴홍조, 질건조증 등에 효과가 있으나 △장기 복용할 경우 뇌졸중은 1.41배, 유방암은 1.26배, 심장발작은 1.29배 더 발생할 수 있고 △심장질환 개선 효과는 없다고 경고했다.

연구진들은 50∼79세 폐경 여성 1만6608명을 대상으로 2005년까지 8년 예정으로 진행해오던 임상시험을 중단하고 대상자들에게 더 이상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호르몬제제(약품명 프렘프로)를 복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WHI 보고서의 쟁점은 △표본 선정의 부정확성 △특정 호르몬제제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한계 △비만자가 많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대한폐경학회는 국내의 유방암 환자 발생 빈도는 서양의 12∼25%에 불과하며 발생 시기도 미국에서는 3분의 2가 50대 이후 발생하는 데 비해 우리는 3분의 2가 50대 이전에 발생한다며 미국의 연구를 우리에게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호르몬 요법 동향=런던 임페리얼 대학 존 스티븐슨 교수는 “호르몬 요법이 심장질환 개선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경우는 용량이 과도했거나 프로게스테론의 부작용이 발현하는 등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경우에 제한된다”며 최근의 연구 결과는 호르몬 요법이 심장질환 발생을 약 40∼50% 감소시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티븐슨 교수는 “호르몬 요법의 효과는 호르몬의 용량과 타입에 따라 달라진다”며 “합성 스테로이드인 티볼론(약품명 리비알) 등 다른 종류의 호르몬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메디시 스텍트럼 트웬티 병원그룹의 헨크 프랭크 박사는 “실험실 연구에서는 프로게스테론 단독 혹은 에스트로겐과의 혼합제제 사용이 유방암 세포를 증식시킨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호르몬, 내 몸에 맞춘다=헝가리의 세인트 마가렛 병원의 카롤리 산도르 토스 박사는 “유럽에서 뼈엉성증, 심장질환 및 알츠하이머 예방에 대한 호르몬 치료의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며 최근 제기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환자 개개인에 대한 맞춤 치료가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토스 박사는 △환자에게 식이요법과 운동 등 생활습관의 변화를 먼저 추천하고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며 △갱년기 증세를 보이는 여성에게만 호르몬 요법을 사용하되 △최저 용량을 사용할 것을 제시했다.

이번 학회에서는 티볼론이나 뼈엉성증 치료제인 랄녹시펜(약품명 에비스타) 등 다양한 호르몬제제에 대한 활발한 평가도 이루어졌다. 티볼론의 경우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뿐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리비도(본능적 욕망) 저하로 고민하거나 성적 활력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와 관련해 대한폐경학회도 △호르몬 요법 사용 전 가족력 비만도 폐경연령 등을 점검해 개인의 특성에 따라 투여제제 용량 및 방법을 선택하고 △심장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한 호르몬 요법은 지양하며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 단일제제만을 투여하며 △호르몬 요법 시행 중 정기적인 유방암 검사를 받도록 각 병원측에 권고했다.

부쿠레슈티=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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