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문터널 버스전복 화재…시민들이 대형참사 막았다

  • 입력 2003년 6월 6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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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버스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홍지동 내부순환로 성산방면 홍지문 터널 안에서 사고로 전복된 버스가 불에 탄 채 놓여있다. 권주훈기자
불탄 버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홍지동 내부순환로 성산방면 홍지문 터널 안에서 사고로 전복된 버스가 불에 탄 채 놓여있다. 권주훈기자
《6일 오전 서울 내부순환로 홍지문터널 안에서 버스가 전복되면서 화재가 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이 발생했다. 사고 순간 터널 안은 아수라장이 됐으나 이 와중에도 일부 승객은 버스의 창문을 깨 다른 승객들을 대피시켰고 소화전을 이용해 진화에 나서는 등 시민정신을 발휘해 대형사고를 막았다.》

▽사고발생=이날 오전 9시15분경 서대문구 홍은동과 종로구 평창동을 잇는 홍지문터널(길이 1890m) 중간 800m 지점에서 성산대교 방향으로 가던 25인승 교회 버스가 앞서가던 테라칸 승용차를 추돌한 후 전복되면서 터널 벽을 들이받고 화재가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버스는 전소됐으며 불은 승용차에도 옮겨붙었다.

테라칸 운전자 김경철씨(33)는 “버스가 달려와 뒤를 박고는 벽면에 부딪쳤다”며 “추돌 순간 바퀴가 타버렸는지 차가 움직이지 않아 내려서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뒤집히고… 구조하고… 불 끄고…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홍지동 내부순환로 성산방면 홍지문 터널 안에서 버스가 승용차를 추돌하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했다. (1)사고가 난 25인승 버스가 전복되고 있다. (2)버스 뒷문으로 승객을 구출하고 있다. (3)불꽃이 일기 시작한 버스에서 부상자를 꺼내고 있다. (4)시민들이 소방차가 도착하기에 앞서 터널 내부의 소방호스를 이용해 불을 끄고 있다. 연합

이 사고로 숨진 사람은 없었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박모씨(48·여) 등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윤모씨(44·여) 등 45명이 타박상을 입거나 연기에 질식되기도 했다.

불이 나자 연기에 놀란 승객들과 터널에 이미 진입해 있던 차량 운전자 100여명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를 떠올리며 차량을 그대로 세워둔 채 터널 밖으로 탈출하는 등 큰 소동을 빚었다.

▽방제시설의 문제점=사고 직후 터널 안은 전기가 나가면서 전등이 꺼지고 환기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혼란이 심했다. 홍지문터널관리소가 곧 발전기를 가동해 비상등이 켜졌지만 환기시설은 가동되지 않았다. 환기시설은 정전된 지 19분이 지나 홍지문과 정릉터널 사이의 관리소 직원들이 기계실까지 가서 차단기를 올린 뒤에야 가동됐다.

비상시 터널 내 연기 및 유독가스를 별도의 통로를 통해 외부로 배출하는 반횡류식 환기시설이 있었지만 정전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시민정신 발휘=이 와중에도 터널 안에서는 서로 도우며 터널을 탈출하는 시민정신이 발휘됐다. 김근수씨(62) 등 승객과 시민 4, 5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구출하고 터널 벽면에 내장된 소화전을 이용해 화재진압을 벌여 피해 확산을 막았다. 일부 시민은 택시를 이용해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일부 차량이 반대편 차선으로 주행을 계속하는 등 안전불감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불은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40여분 만에 꺼졌다.

경찰은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버스운전사 오모씨(66)의 진술에 따라 차량 이상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1999년 완공된 홍지문터널은 서울에서 가장 긴 쌍굴터널(편도 3차로)이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구조-진화 앞장선 김근수씨 ▼

김근수씨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 사고현장에서 버스 승객 김근수씨(62·서울 성동구 마장동·사진)는 침착하게 승객들을 구하고 불을 끄는 데 앞장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김씨는 버스 전복 때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버스 유리창을 깨고 구조작업에 나섰다. 대부분 50∼60대 여성인 다른 승객들은 머리 등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사고차량을 뒤따라오던 이길우(67) 조승택씨(57)도 힘을 보탰다.

승객 대부분을 차량 밖으로 구출하자 이번엔 화재가 발생했다. 김씨는 곧바로 사고지점 반대편의 소화전 쪽으로 뛰었다. 김씨는 지나가는 차들을 정지시킨 뒤 호스를 꺼내 화재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소방호스가 짧아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이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다른 사람들은 대피하기 시작했다. 김씨도 차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자욱해지자 진화 작업을 포기했다.

왼쪽 팔과 목 부위를 다쳐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김포에 사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홍지문터널을 자주 지나다닐 때 혹시 사고가 있을까 싶어 소화전 위치를 눈여겨보았다”며 “소화전 호스가 조금만 길었어도 불을 끌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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