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전 두 아이 입양 '파란눈의 총각아빠'

  • 입력 2003년 6월 6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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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옥씨
29년 전 미국인 청년에게 입양돼 화제를 모았던 두 꼬마가 30대 중반의 어른이 돼 친부모를 찾고 있다.

1974년 당시 이들의 얘기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아이를 입양했던 양아버지 테리 미터(당시 28세) 때문에 ‘총각 아빠’라는 제목으로 그해 본보 7월25일자에 기사화됐다.

29년 만에 부모를 찾아 나선 두 아이는 1965년생으로 당시 9세이던 정성구씨와 1965년생으로 추정되지만 입양 때 동생으로 정해진 최영철씨.

오른쪽은 테리 미터가 1973년 겨울 정성구군(오른쪽)과 최영철군을 입양하기 전 함께 찍은 사진이며 왼쪽은 ‘총각 아빠’ 사연을 다룬 1974년 7월25일자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외국인학교 수학교사였던 미터씨가 영철군(당시 이름 이창수)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11월.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10원을 달라고 구걸하는 영철군의 손을 잡고 경기 부천시 소재 ‘새소년 소망의 집’이라는 보육원에 데려다 준 것. 미터씨는 이후 매주 보육원을 찾으면서 영철군과 정이 들었다.

미터씨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입양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미국에 있던 그의 어머니와 보육원 관계자를 설득했고 결국 74년 영철군의 보육원 친구인 성구군까지 입양했다.

한편 미터씨는 이듬해인 75년 1월 한국여성인 한혜옥씨(미국 이름 한나·53·간호사)와 결혼했다.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간 미터씨 부부는 이후 딸 셋을 더 낳아 모두 5남매를 키웠다.

한씨는 5남매를 키우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두 아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부채춤 공연까지 할 정도. 설날이 되면 온 식구가 모여 세배를 올리고 윷판을 벌였다. 한씨는 또 두 아들이 친부모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도록 옛날 얘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구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전거 사고로 사망했고 성이 강씨인 어머니는 무당 일을 도와주며 생계를 잇다 재가했다고 기억한다. 입양 확인을 위해 보육원 교사가 어머니 강씨를 찾아갔던 주소지는 서대문구 신촌동 일대였다.

영철씨는 5∼6세 때 홀어머니가 때린다는 이유로 집을 나와 기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최인철’이라는 형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한씨는 “두 아들이 공부를 잘해 고등학교를 모두 1등으로 졸업했고 대학도 모두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며 대견해했다.

성구씨(미국 이름 성구 미터)는 인디애나주립대를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동생 영철씨(창수 미터)는 퍼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결혼해 캘리포니아 소재 전자회사에 근무 중이다.

교편을 잡고 있는 미터씨와 함께 시카고에서 살고 있는 한씨는 5일 본사를 찾아 “두 아들이 결혼해 자식을 가지면서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며 “두 아들의 친부모가 손자 손녀를 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두 손 모아 부탁했다.

한씨는 시카고 한인기독교TV에서 ‘한나의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내게도 병이 생길 줄이야’라는 건강관련 책자를 발간해 1993년 국내 TV프로그램인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에서 저혈당병을 소개하기도 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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