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길진균/北송금 특검 고민 속으로?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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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이 3일 대북 송금 자금의 성격에 대해 경협과 정상회담 대가가 모두 포함된 ‘패키지’로 보인다는 어정쩡한 답안지를 내비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검팀은 이날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도 있다”고 언급한 뒤 이 같은 답안지를 슬쩍 내보인 것.

사실 ‘패키지 설’은 이 사건 수사 결과가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에 미칠 파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특검팀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검팀이 이 같은 답안지를 내놓은 시점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다.

특검팀은 지난달까지 △송금 과정에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깊이 개입한 점 △자금 조달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 산업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한 점 △현대측이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승인도 없이 일반적인 경협자금과 다른 경로로 은밀히 돈을 보낸 점 등 여러 정황 증거를 들어 내부적으로 ‘대북 송금은 남북정상회담 대가’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특검팀의 입장이 ‘패키지’론으로 바뀐 것이다.

3일 국회에서는 민주당 의원 30명이 특검 수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를 원천적으로 훼손시키는 수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과 민주당 의원들의 특검 수사에 대한 의견 개진은 특검팀의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었다.

그 직후 임동원(林東源) 전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가 특검에서 결정적인 진술을 했다는 사실이 흘러나왔다. 임 전 특보는 “2000년 6월초 북측이 경호상의 이유로 정상회담 일정 조정을 요청해 왔고 6월 3일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해 회담을 13일로 연기했다”며 그동안의 송금 지연이 정상회담 연기의 원인이라는 ‘남북정상회담 대가설’을 일축시킬 만한 진술을 했다.

그러나 그가 전 정권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이 같은 진술을 왜 그동안 숨기고 있었는지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지난해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민주당의 햇볕정책을 공격했을 때도, 2월14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때도 그는 이처럼 ‘결정적인 팩트’를 밝히지 않았다.

임 전 특보의 갑작스러운 진술과 노 대통령 등 정치권의 발언에 뒤이은 특검팀의 입장 변화가 정말 우연하게 연이어 일어난 오비이락일까.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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