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명 돌보는 백충일목사 “초라하지만 사랑의 공동체”

  • 입력 2003년 6월 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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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우렁이처럼 살다가 가야합니다.”

경기 의정부시 금호동에서 장애인과 갈 곳 없는 독거노인을 위한 ‘애헌교회’를 7년째 운영해오는 백충일(白忠一) 목사의 말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장애인 13명과 독거노인 12명이 기거하는 애헌교회는 96년 백 목사가 우사와 폐가를 사들여 개조한 ‘초라한’ 교회다. 이런 백 목사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백충일 목사. -김선우기자

“3월에 한 건설회사가 이 지역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동네 땅을 사들였어요. 모두들 땅을 팔았지만 전 팔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꾸려온 곳인데….”

결국 애헌교회 때문에 건설회사는 개발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네의 민심은 흉흉해졌다. 평당 200만원 하는 곳을 건설회사에서 400만원으로 쳐준다고 했기 때문. 교회를 몰아내자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백 목사는 애써 만든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의 터전을 ‘개발에 밀려’ 내놓을 수는 없다고 거듭 다짐했다.

백 목사는 96년 3500만원을 들여 이곳을 구입했다. 돈을 대주기로 한 교회 장로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구걸을 하다시피 돈을 모았다. 큰 교회 40곳에 편지를 보내고 발이 닳도록 찾아가 보았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천신만고 끝에 돈을 모은 다음엔 곧바로 지역 봉사에 들어갔다. 98년 수해 때는 아르바이트생을 모아 물이 찼던 동네 가정집에 도배를 해주기도 했다. 갈 곳 없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백 목사는 이들에게 배정되는 생계보조금을 모두 이들의 개인 통장에 저축해 주고 있다.

그는 요즘도 교회 운영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주일에 4일씩 플래카드나 청첩장을 의뢰받아 제조업체에 보내는 ‘사업’도 하고 있다.

50세 때 뒤늦게 신학대에 진학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백 목사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삶의 터전인 교회를 ‘몰아내려는’ 일부 주민들에 대해서는 섭섭함을 표했다.

백 목사에게는 요즘 한 가지 꿈이 있다. 노인들에게 무료로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실을 교회 한 귀퉁이에 차리려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분주하게 하루를 보낸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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