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정상회담 뭘 논의하나]北核 이견조율 쉽지 않을듯

  • 입력 2003년 6월 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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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방일기간(6∼9일) 중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7일) 등을 통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양국간의 입장 조율 및 양국 교류협력 증대 등의 문제를 폭넓게 논의할 전망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최대 현안은 북핵 문제다.

북핵 문제와 관련, 정부는 장기적으로 북한 개방을 이끌어내는 데 일본의 역할이 가장 클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대북 경제지원이나 경제압박의 키를 일본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의 공조가 한미 공조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대북 압박 움직임으로 인해 앞으로의 대응 방향에서는 미묘한 차이점이 감지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상황을 악화시킬 때의 대응 방향도 한미 정상회담(5월15일)에서 합의한 ‘추가적 조치(further steps)’와 미일 정상회담(5월25일) 공동성명의 ‘강경한 조치(tougher measures)’간에 시각차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북한의 마약 및 위조지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북 제재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이도 예상된다.

따라서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북핵을 용납하지 않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협의는 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로 넘길 예정이다. 정부는 3자회담의 후속일정 등을 비롯한 한일간의 북핵 문제 조율을 위해 4일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일본에 파견했다.

그 밖의 한일 교류협력 문제는 순조롭게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양국의 국내선 공항인 김포공항과 하네다(羽田) 공항간 셔틀기 운항을 1주일에 서너 차례 운영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문제는 우리정부가 2005년까지 해결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일본 법무성 출입국관리소의 반발이 있다는 점에서 시기를 명시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또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도 현재 산관학 공동연구가 끝났지만, 추진 시기는 양국이 앞으로 검토하자는 원칙적인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공동성명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 정부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한일 정상회담 주요 의제▼

▽북한 핵문제 해결 위한 공조방안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기반조성

▽일본 입국시 항구적 사증(비자) 면제

▽김포공항∼하네다공항 간 셔틀기 운항

▽과거사 문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재일한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회담 악재들▼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예상치 않은 악재가 돌출해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아소 다로(痲生太朗) 자민당 정조회장이 ‘창씨개명은 한국인들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망언을 한 데 이어 노 대통령 방일기간에 유사법제 3개 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핵 문제에 대해 일본이 강경기조로 선회한 것도 부담이다.

현충일 방일 논란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아소 정조회장의 발언으로 인해 노 대통령은 방일기간에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더 큰 걸림돌로 떠오른 것은 유사법제 통과 문제다. 유사법제를 문제 삼아야 할 우리 정부가 이를 통과시키는 데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국내문제이기는 하지만 하필 노 대통령 방일시기에 처리를 하려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있다.

노 대통령도 4일 청와대에서 주한 일본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외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므로 중국과 인근 국가에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는 날(9일)에 유사법제를 통과시킨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국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부담스럽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이 최근 대북제재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북한에 대해 실정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일본은 또 북-미-중 3자회담의 후속회담에는 한국과 일본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배제되더라도 조속한 회담재개가 중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회담성과 日측 전망▼

일본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의 최대 이슈인 북한 핵 위기에 대해서는 ‘한일공조로 해결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재확인하는 데 그칠 것이며 구체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최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북한 핵 문제와 동시에 풀기 위해 외교 노력을 기울여왔다. 프랑스 에비앙 주요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지난해 9월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뒤 일본 내에 거세진 혐한(嫌韓) 여론과 정부 내의 대북 강경파의 득세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중지된 북한과의 수교 교섭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뿐 아니라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일본은 북한 문제를 대화와 협력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북한 미국 중국의 3자 회담을 지지하면서도 적당한 시점에 한국 일본 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 회담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존 견해도 피력할 전망이다.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 대북 제재조치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북 제재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까지는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교섭 개시나 한국이 요구해온 한국민의 일본 입국시 입국사증(비자) 면제 등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진전된 분위기 조성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일본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굳이 과거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노 대통령은 TV를 통한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언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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