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100일]박세일 서울대교수 "청와대가 일일이 간섭하니"

  • 입력 2003년 6월 3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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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이론과 국정경험을 두루 갖춰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국무총리나 청와대 정책실장의 물망에 올랐던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세일 교수(55·법경제학). 그가 다른 학자들과 함께 펴낸 책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 탐독하고 감동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 정부의 청와대 시스템도 이 연구결과에 따라 마련됐다고 한다. 박 교수는 ‘노 정부 100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금 나서고 싶지 않다”며 고사하는 박 교수를 몇 차례 간청 끝에 3일 오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란 책이 현재의 청와대 시스템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아는데 그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졌는가.

“현 청와대 조직과 운영을 보면 하드웨어의 측면(조직 개편방향)에서는 우리가 제안한 내용이 많이 수용됐지만 소프트웨어(운영철학과 운영방식, 인사)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정책 중심의 정책실과 정무 중심의 비서실로 나누고 부처담당 수석비서관제를 폐지하며 정책실 밑에 몇 개의 태스크포스팀을 둔 현 청와대 조직은 민주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선택과 집중형’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대부분의 국정을 총리와 장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부처간 이견이 심한 사안, 10년 후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 등 5∼6개의 ‘대통령 프로젝트’만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한다. 이를 테면, 교육개혁 등의 문제가 대통령 프로젝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통령 업무의 과부하(過負荷)로 나타나고 있다. 분권형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청와대가 일일이 나서 중앙집권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이 같은 잘못이 나타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초 ‘책임총리제’를 약속했으나 현재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천되기 어려운 과제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원칙과 신념에 달려 있다. 현행 헌법 하에서도 책임총리제를 충분히 할 수 있다. 권력은 아래로 위임할수록 효과적이며, 나눌수록 강해진다.”

박 교수는 최근 화물연대 파업 등 국가적 중요사안이 발생할 경우 정부 각 부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조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대부분의 조정은 우선 총리실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만, 총리실 차원의 조정이 불가능할 경우에만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는 것. 그는 큰 사안이 발생할 경우 청와대, 총리실, 국정원, 당 등으로 구성된 효과적인 ‘최고 정책조정기구’가 컨트롤타워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노 정부는 처음부터 딜레마를 안고 출발했다. 보수세력의 외면과 진보세력의 막무가내식 주장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집권세력은 이 사회의 가운데 서서 여야, 좌우, 노소 모두를 통합하고 아울러 가야 한다. 그리고 ‘정책 탕평책’을 써야 한다. 정책 탕평책이란 모든 정책논의를 ‘이념의 문제’에서 접근하지 말고 ‘과학적 분석’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다. 정책 탕평책을 쓰면 불필요한 사회분열 이념분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앞으로 5년 가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대통령은 자신의 업무를 줄여야 한다. 작은 문제에 직접 나서기보다 여유를 갖고 큰 문제를 멀리 보면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국정은 아래로 위임하고 자신은 외교안보 문제와 5, 6개의 ‘대통령 프로젝트’에만 집중해야 한다. 수석비서관들도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마라’는 식의 적극적 보좌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코드와 상관없이 이 나라 최고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모든 경륜과 지혜를 모아 개혁 청사진과 원칙, 방향을 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또 국민통합적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이다.”박 교수는 아울러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면서 그 초점은 투자와 고용창출의 극대화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식인은 조건이 맞으면 직접 국정에 참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독립된 싱크탱크를 통해 정책의 공론화 전문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식인의 현실참여’를 역설했다.

윤정국 오피니언팀장 jkyoon@donga.com

▼박세일 교수는…▼

▶서울대 법대 졸업(1970)

▶미국 코넬대 경제학박사(1980)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사회복지수석비서관(1995∼1998)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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