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꼬리무는 의혹 외면…또 '언론 탓'

  • 입력 2003년 6월 2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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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형 건평(健平)씨와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李基明)씨의 부동산 거래 의혹에 대해 “참으로 큰 인식차이를 느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마디로 “의혹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황에서 언론이 막연하게 ‘아니면 말고’식으로 써댄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위법이 있으면 조사해서 처벌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도 표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흔히들 있는 일상적인 거래의 내용을 놓고 마구 의혹만 제기하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 나는 신문도 없다”며 격앙된 어조로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나아가 “참으로 신빙성이 없는 얘기를 가지고 새까맣게 신문에 발라서 마치 대통령 측근에게 무슨 큰일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 정말 의혹이 있는지 여러분이 확신을 가질 때 보도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평씨와 이씨에 대한 의혹은 노 대통령이 경영했던 ‘장수천’의 부채를 갚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즉 노 대통령도 이 문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만큼 언론에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우선 성실하게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언론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는 인식도 문제다. 대통령 주변인사들은 단순한 사인(私人)이 아닌 만큼 이들의 석연치 않은 거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 고유의 사명이자 책무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언론이 추적해온 것은 ‘상식선’에서 의혹이지, 근거 없이 의문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이 이러한 문제 제기에 노골적으로 흥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권력과 대통령 주변인사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민정수석비서관실은 당초 건평씨와 이씨의 부동산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대통령 취임 전의 일이다”는 이유로 설명을 피해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28일 노 대통령의 특별회견을 통해 뒤늦게 설명에 나섰으나 되레 의혹만 증폭시켰다.

단적인 예로 이씨의 경기 용인시 땅과 관련해 지난해 8월 1차 매매계약이 이뤄졌을 때의 계약서에서 ‘매수자가 국민은행 부채 10억원을 승계한다’는 내용의 특약사항 2, 3항을 삭제한 채 공개했다가 1차 매매대금(28억원)과 올해 2월의 2차 매매대금(40억원)간의 차이를 둘러싼 의혹만 자초했다.

또 이씨 형제와 소명산업개발이 실버타운 건립을 용인시에 문의한 10만6000평이 올해 1월22일 자연녹지로 지정된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구체적 해명을 못한 채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용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한나라당 소속이지 않느냐”는 막연한 반박만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주변 비리의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과 야당과 언론을 상대로 마치 ‘역린(逆鱗)’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역정을 낸 것은 유감이다”면서 “진솔하게 해명하고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엄명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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