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대통령 防彈 정당

  • 입력 2003년 6월 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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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자신이 경영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채무 변제 과정과 형 건평(健平)씨의 부동산 문제를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던 지난달 28일 오전. 당사에서 삼삼오오 회견을 지켜보던 민주당 당직자들은 회견이 끝난 뒤에도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솔직히 말해 국민이 분명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홍보수석실에서 준비를 철저히 안 한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해명에 대해선 시민단체들까지 “미흡하다. 검찰 등 공적 기구를 통해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런 당 안팎의 분위기와 달리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이날 공식 논평을 통해 “온갖 억측과 의혹을 말끔히 해소시킨 시의적절한 회견이었다. 대통령의 직접 해명으로 각종 의혹이 (야당의) 정치공세에 불과한 것임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에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측이 한나라당의 ‘부동산 공세’에 맞불작전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식 주장대로라면 일부 신흥개발지역에 투기 목적으로 땅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 의원들도 부동산 구입과정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의원 7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장 부대변인은 “6월1일 ‘한나라당 투기의혹 10걸’을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민주당은 30일에도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기절초풍 부동산 투기 의혹 10걸’을 발표하면 한나라당이 ‘부동산 투기당’임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31일 논평에서는 “우리 당에 제보된 내용에 의하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발표일(6월1일)의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듯했다.

그러나 정작 1일이 되자 민주당은 “중요한 사안인 만큼 최고위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보고한 뒤 논의해 발표키로 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어 2일 최고위원회의에선 결국 “땅 취득과정에 불법과 부도덕성이 있었는지를 면밀히 조사한 뒤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자”는 신중론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이 과정만 살펴봐도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면밀한 조사도 없이 폭로를 위한 폭로를 했음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대통령 보호를 위해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해가며 ‘대통령의 방탄 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정치개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부형권 정치부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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