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도기 현상'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 입력 2003년 6월 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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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5일 간격으로 두 차례나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국민은 묻고 싶은 게 많고 노 대통령은 답해야 할 게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잇단 회견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 때문이다.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사회갈등의 분출과 그에 따른 혼란을 ‘새로운 관행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규정한 것부터가 일반 정서와는 다르다.

노 대통령이 밝힌 대로 화물연대가 몇 달 전부터 거듭 정부에 진정을 냈는데도 누구도 대화창구를 열어주지 않았고 마침내 운송거부 사태가 터졌는데도 며칠이 지나도록 관계부처에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과도기의 시행착오나 실수로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이다. 교육부총리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대통령 지시를 ‘무시’한 것이나 외국을 방문 중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은 것 역시 새로운 관행과 문화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이처럼 때 이른 누수현상은 새 집권세력이 국정운영의 대체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기도 전에 탈(脫)권위와 탈기성질서를 서두르다 생긴 구조적인 부작용이라고 해야 옳다. 그리고 권위와 기성질서가 흔들리는 틈을 타 집단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력행사와 떼쓰기가 역병처럼 번졌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이 경제와 민생의 총체적이고 절박한 위기에 대한 언급은 생락한 채 해외발행 한국채권의 금리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이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고 ‘홍보’한 것 또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거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언론에 “왜 대통령만 비추느냐”고 물은 것도 엉뚱했다. 그것은 대통령만 보이도록 한 국정행태의 문제이지 언론의 잘못이 아닌 때문이다.

다만 노 대통령이 자신과 정부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왜 잘못했는지는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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