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100일]원칙없는 國政…갈등 분열 키운다

  • 입력 2003년 6월 1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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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문제가 많아 중단해야 할 것 같다.(윤덕홍 교육부총리, 3월8일 라디오 인터뷰)

▽NEIS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윤 부총리, 3월12일 학교 현장 방문)

▽전교조가 정부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을 들어줘서는 안 된다.(노무현 대통령, 5월20일 국무회의)

▽고3은 NEIS로, 고2 이하는 NEIS 이전 체제로 시행하겠다.(윤 부총리, 5월26일 NEIS 대책 발표)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는데 대통령 지시가 안 먹혔다.(노 대통령, 5월28일 노사협력 유공자 오찬)

▽고2 이하는 수기(手記)로 하되 NEIS,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 단독컴퓨터(SA)도 가능하다. 합의 파기가 아니다.(윤 부총리, 6월1일 NEIS 세부 시행계획 발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반전사상 교육과정에 반미내용이 포함됐다는데 대책을 마련하라.(노 대통령, 4월23일 국무회의)

▽(전교조 관련 발언이) 반미교육으로 단정한 것처럼 비쳤다. 과잉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노 대통령, 4월24일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교육 분야가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서 가장 혼란스럽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미교육 논란에 이어 NEIS 문제로 교육계가 들끓고 있다. 새 정부 조각에서 가장 늦게 기용 발표가 난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설익은 정책 발언을 한 뒤 이를 번복하는 일을 되풀이하다 교육계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NEIS의 경우만 해도 윤 부총리는 전교조가 도입을 반대하는 가운데 취임 초 유보 중단을 시사한 데 이어 ‘발언 취소→인권위 결정 존중→전면 재검토→사실상 시행’ 등으로 ‘갈지자’ 행보를 계속해 왔다.

윤 부총리는 전교조가 최근 연가투쟁을 결의하는 등 강력하게 나오자 연말까지 NEIS를 전면 재검토하고 정보화위원회를 구성해 NEIS로 갈 것인지, 다른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전교조 요구에 굴복한 이 같은 결정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교원노동조합,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교장회장 협의회와 학부모단체 등이 강력 반발하며 윤 부총리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 교육계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또 전국 시도교육감들마저 “일선 현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정부안을 거부하고 교육부가 주최한 시도교육감회의에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교조가 주도한 반미, 반전교육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가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반전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반미감정을 촉발하는 사례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교육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교육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그는 1주일 만에 이를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을 뒤집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교육계는 노 대통령과 윤 부총리의 말 바꾸기가 국민들의 불신만 초래했다며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언론 문제▼

▽청와대와 정부 모두 가판신문 구독을 전부 금지하겠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월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노 대통령, 3월11일 국무회의)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고, 공무원들은 기자들의 전화취재 내용을 공보관에게 사후 보고하라.(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3월14일 문화부 홍보업무운영방안)

▽몇몇 족벌언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끊임없이 박해했다. 나도 부당한 공격을 받아왔고 그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노 대통령, 4월2일 국정연설)

▽상위 3개 언론사의 점유율이 75%에 가깝다면 문제가 있다. ‘신문공동배달제’에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이 문화부 장관, 4월15일 국회 문광위 답변)

▽언론이 어느 정권에 대해 지금처럼 적대적인 기사를 쓴 적이 있느냐. 대통령 대접을 한 적이 있느냐.(노 대통령, 5월2일 MBC 100분토론)

참여 정부에서 가장 많이 논쟁이 된 것 중의 하나가 언론정책이다. 이로 인해 현 정부는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 없이 곧바로 ‘갈등 국면’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정부기관의 가판신문 구독 금지 조치를 밝힌 데 이어 ‘언론사 창간기념 인터뷰 사절’ 등으로 언론과의 관계 변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부 부처의 출입기자실 제도 개편은 첫 변화였다. 2월17일 청와대가 기자실을 폐지, 개방형 브리핑제로 전환하겠다며 비서실 방문취재를 금지시킨 것을 시작으로 문화관광부 등 각 부처의 취재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 △(공무원의) 취재내용 사후보고 △취재원 실명제 등을 골자로 한 취재시스템 변화는 언론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또 노 대통령이 주류 신문에 강한 반감을 여러 차례 표명한 데 이어 정부가 취한 일련의 신문 관련 조치들은 ‘신문시장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려 한다는 의혹을 낳았다.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4월15일 국회에서 “상위 3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이 75%에 가깝다면 문제”라며 “시장점유율이 낮은 신문을 위해 ‘공동배달제’를 문화산업기금에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혀 물의를 빚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고시를 개정해 신문협회가 자율 규제 해오던 신문시장의 공정경쟁질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KBS 사장 인선 과정에도 청와대의 개입설이 끊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당초 KBS 사장으로 임명됐던 서동구씨와 관련, 4월2일 “서씨에게 KBS 사장을 맡아달라고 직접 부탁했다”고 시인한 뒤 “앞으로 다시는 언론 근방에서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서씨가 사장직을 사퇴한 뒤 정연주씨가 KBS이사회에서 새 사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도 청와대측 인사가 계속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노사 관계▼

▽현재는 경제계의 힘이 세지만 5년 동안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월13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방문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구축과 신노사문화의 정착에 노력을 다하겠다. 노사갈등의 자율해결 및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원칙을 확실히 지키겠다.(권기홍 노동부 장관, 취임사)

▽노동부는 정부 내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그것을 노동편향이라 한다면 편향하겠다.(권 노동부 장관, 취임 후 기자간담회 등에서)

▽(불법 집단행동에는) 벌을 사전에 예고하고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사회갈등, 질서교란, 국가기능 중단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매뉴얼이 없다.(노 대통령, 지난달 20일 국무회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80년대에는 돌멩이와 화염병을 들었는데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노조도 이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노 대통령, 지난달 28일 노사협력 유공자 초청 오찬)

참여정부 노사관계 정책의 기본방향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다소 철학적인 말로 요약된다. 쉽게 풀면, 상대적 약자였던 노동조합(노동계)을 사용자와 대등한 주체로 인정해 힘의 균형을 이룬 뒤 대화와 타협의 신노사문화를 정착시켜 노사관계를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양대 노총을 방문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참여정부는 친(親) 노동자’라는 인식을 노동계 안팎에 심었다.

참여 정부 출범 후 첫 대형 노사분규였던 두산중공업 파업사태의 경우 노조원의 분신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노동부는 ‘자율 해결’의 원칙을 깨고 특별조사를 실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발표하고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직접 현장에 내려가 중재하는 등 깊숙이 개입해 사실상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두산중공업 사태 해결에 자극받은 철도노조, 화물차량 지입차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등이 줄줄이 들고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화물연대 포항지부 조합원들의 화주(貨主)업체 출입문 봉쇄 등 명백한 ‘불법사태’가 불거졌다.

노 대통령은 뒤늦게 “불법 집단행동에는 벌을 사전에 예고하고 반드시 실천에 옮기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권 장관도 “불합리한 법과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만 현행법은 (노조도) 지켜야 한다”며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편 화물연대 파업사태 등의 해결에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개입하면서 노동계가 사용자가 아니라 청와대와 교섭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조흥은행 노조가 은행매각 협상에 반대하며 청와대에 대화를 요구, 문 수석과 2일 비공개 토론회를 갖는 것이 단적인 사례.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이미 노동계에는 ‘문재인 말고는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이를 방치할 경우 노사관계는 ‘시스템’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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