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100일]내각-참모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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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공천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 선거법을 개정해주기 바란다(노 대통령, 4월2일 국정연설)

△정당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나(대통령)의 무능력, 바로 그것이 나의 정당개혁 출발이다(노 대통령, 4월15일 문화일보 인터뷰)

▼관련기사▼

- 원칙없는 國政…갈등 분열 키운다

△(정치개혁을 위해선) ‘당을 깨라’ ‘당을 같이 하라’는 식이 아니라 개혁의 분위기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노 대통령, 5월1일 MBC 100분토론)

△소수당이라도 지역당의 대표, 지역대표라는 혐의를 받지 않으면 대통령 하기가 수월할 것이고, 아무리 다수당이라도 지역대표라는 의심을 받으면 어려워진다(노 대통령, 5월27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내가 분당이나 신당에 관해 말할 수도 없고, 어렵다. 민주당이 전국적 토대 위에 서야 한다(노 대통령, 5월27일 민주당 의원 부부동반 초청 만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3김식 낡은 정치의 타파’를 외쳐, 정치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를 이행하기 위해 당선자 시절 여야 총무와 회담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취임 이후 임시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여야 대표와 잦은 대화를 갖는 등 과거 ‘제왕적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송금 특검 법안’을 공포하고,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해 지지층의 반발을 사는 등 일부 국정현안의 처리엔 초당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정치개혁은 제도화나 시스템화의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파격적 정치 행태’의 틀 안에 정치개혁이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해구(鄭海龜)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정부 정책기획위 주최 심포지엄에서 “여당의 정치개혁이 당내 권력 갈등의 정략적 이해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짐으로써 참여정부의 정치개혁 추진이 일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그 정당성이 훼손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국회 정보위의 ‘부적격’ 의견을 무시하고, 국가정보원의 고영구(高泳耉) 원장과 서동만(徐東晩) 기조실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그나마 쌓아온 ‘야당 존중, 국회 존중’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혔다.

또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내년 총선부터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민주당 내의 신당 논의에 대해서도 ‘전국 정당화’의 필요성만 강조하는 수준이다.

그는 “당-정 분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정치개혁”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당 내에선 “신당 논의를 둘러싼 당내 갈등의 가장 큰 책임은 노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외교 안보▼

△부랴부랴 가서 사진 한판 찍고, 그런 방식으로는 (미국에) 가지 않겠다(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난해 5월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미국을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주의면 또 어떠냐(노 대통령 후보, 지난해 9월11일 대구 영남대 초청강연)

△한미관계는 수평적이고 균형 있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노 대통령 후보, 지난해 12월4일 외신기자회견)

△대북정책의 기조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노 대통령 후보, 지난해 9월10일 아시아유럽 프레스포럼 초청 간담회)

△(주한미군 재조정 관련) 우리는 대미관계가 일방적 대미의존에서 벗어나 좀 더 한국측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관계로 나가고 싶다(정대철 특사, 2월5일 노 대통령 당선자 특사로 방미했을 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새 정부는 북한의 붕괴보다는 핵을 보유한 북한을 선호한다는 인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있다(윤영관 외교부장관, 2월11일 노 대통령 당선자 특사로 방미했을 때)

외교안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북한 핵과 한미관계 재정립 문제 등은 그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부담스러운 시험대였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자주적인 대미관과 진보적 대북관을 잇달아 피력, 역대 대통령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2월13일 한국노총 강연회에서 미국의 대북제재 문제와 관련, “(전쟁이 나서)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한미공조보다 남북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새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수립되기 전에 그가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와 대등한 한미관계 등 민감한 현안에 관해 언급함에 따라 한미간엔 이상기류가 형성됐다. 또 국내 여론도 보수와 진보로 첨예하게 나뉘어 논란을 거듭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결정(3월)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5월15일)을 통해 급격히 변모된 현실인식을 보여줬다. 여기엔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한국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는 바람에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노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남북교류와 북핵문제를 연계시키고, 한미공조를 통한 대북 ‘추가적 조치’ 검토를 언급하자 그의 지지층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그를 반대했던 계층은 노 대통령의 ‘개안(開眼)’을 환영하는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위태롭던 한미관계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차츰 안정기조를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미봉상태에 있는 한미관계가 북핵 문제의 해법을 둘러싸고 다시 갈등국면에 진입할 개연성이 상존하고 있고, 북한은 전혀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외교안보 현실은 여전히 박빙 위를 걷는 형국이다.

노 대통령이 긴밀한 한미공조로 북핵문제를 풀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경험없는 386포진 청와대시스템 혼선 특정수석 人治불러▼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4일로 100일을 맞지만 국정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운용 기조와는 달리 청와대와 내각의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청와대는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책임지고 일하라고 했는데도 옛날 사고방식에 젖은 장관들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A수석비서관)라고 주장하지만, 관료들은 “청와대가 일일이 다 간여하는데 어떻게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경제부처 B국장)라고 반박한다.

▽청와대는 ‘인치(人治)’에 무게=대통령홍보수석실은 1일 참여정부 100일의 가장 큰 변화로 권위주의적이고 제왕적 리더십에서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탈바꿈한 것을 꼽았다. 국무총리와 내각의 권한과 역할이 이전 정부에 비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부처 담당 수석비서관실 제도를 없애고 대통령의 장기 국정비전을 수립하는 정책과제 중심으로 기능을 바꿨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변화가 조기에 정착되지 못함으로써 국정운용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부처 담당 수석비서관제도를 폐지하면서 사회갈등 현안이 특정 수석에게 몰리는 집중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이 대부분의 국정현안에 개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책실이나 대통령직속기구인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동북아중심건설위원회 등은 장기 국정과제를 조율하는 ‘싱크탱크’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인사검증과 친인척 감시, 그리고 민심 파악이 주업무인 민정수석실이 대부분의 갈등현안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86 비서관들의 아마추어리즘=청와대가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데는 행정경험이 없는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점도 큰 요인으로 꼽힌다.

청와대는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조직개편을 하면서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386 측근들을 전진 배치했다. 이광재(李光宰) 국정상황팀장, 윤태영(尹太瀛) 대변인, 천호선(千晧宣) 국민참여팀장, 서갑원(徐甲源) 의전비서팀장 등 386 측근들은 대부분 행정경험이 없는 학생운동권 출신.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1, 2급 비서관 중에서 부처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은 사실상 당연직이나 마찬가지인 허준영(許准榮) 치안비서관과 권선택(權善宅) 인사비서관 두 사람 밖에 없다.

▽내각도 아마추어리즘?=허성관(許成寬) 해양수산부 장관과 한명숙(韓明淑)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새만금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3보1배’ 행진에 참가했다. 사업의 타당성 논란과 별개로 정부 사업을 장관이 반대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문에 허덕이고 있는 윤덕홍(尹德弘) 교육부총리는 노 대통령과 고건(高建) 총리가 “NEIS는 교육인적자원부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화중(金花中) 보건복지부 장관이 느닷없이 “보육업무를 여성부로 이관하겠다”고 사견을 밝힌 것이라든지,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이 “노동부는 정부 내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노동 편향이라면 편향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장관으로는 잘못된 처신이라는 게 공직사회의 지적이다.

책임총리를 맡고 있는 고 총리에게 정작 힘이 실리지 않는 것도 청와대의 권력집중과 내각의 혼선 양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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