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6개월째 '주말 걷기' 나선 정치평론가 손혁재씨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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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의 걷기 릴레이’는 바쁜 일상에 찍는 ‘삶의 쉼표’와도 같다. 사진은 땅끝마을에 선 손혁재씨.-사진제공 손혁재
‘무념무상의 걷기 릴레이’는 바쁜 일상에 찍는 ‘삶의 쉼표’와도 같다. 사진은 땅끝마을에 선 손혁재씨.-사진제공 손혁재
“아무 생각 없이 걸어요. 목표 없이 걷는 자체가 즐겁죠.”

토요일마다 ‘주말 걷기 릴레이’를 계속하고 있는 정치평론가 손혁재(孫赫載·49)씨는 “왜 걷느냐”고 묻자 뜻밖에 싱거운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태어났고 다시 돌아갈 흙냄새를 맡으며 걷는 자체가 기쁨입니다. 무슨 목표를 정한다면 그 자체가 ‘일’이 되지 않겠어요?”

지난달 31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3보1배’ 행사에 참석한 직후 기자와 만난 그는 “새만금 사업 반대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이런 행사와 달리 나의 ‘주말걷기’는 목적도 이름도 없는 개인의 휴식 일정에 불과하다”며 쑥스러워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연구교수 등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그가 토요일 하루를 하염없이 걷기에 바치는 데는 ‘정치개혁’이니 ‘재벌개혁’이니 하는 무슨 수식어가 붙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무념(無念)의 즐거움’만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럼 자아(自我)를 찾기 위한 걸음걸이 정도면 어떨까.

“그것도 너무 거창한 표현이에요. 목표를 세워 두면 그것도 일이 되고 부담이 될 테니까요. 그냥 걷다 보면 평소 앞만 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산과 들을 볼 수 있고, 정신없이 살아온 내 자신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제 삶의 ‘쉼표’ 같은 겁니다.”

그가 ‘주말걷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몇 년 전부터 그냥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그때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50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40대부터는 걷기 시작해야겠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1월 어느 금요일 밤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남하한 그는 다음날 새벽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첫걸음을 시작했다. 달마산을 넘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이날 걷기가 끝난 지점은 다음 토요일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그의 주말걷기는 금요일 밤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여관에서 묵은 뒤 다음날 아침 8시쯤 출발해 오후 3, 4시까지 걷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30km도 걷고, 20km도 걸었다. 주변에 입소문이 나니 시인, 화가, 스님, 현지인 등이 길동무를 자처하며 따라나서기도 했다. 지팡이를 짚은 일행이 철 지난 해수욕장에서 지도를 펴들고 걷다가 순찰차가 쫓아온 적도 있다.

“대도시는 피해 다닙니다. 점심은 주로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막걸리로 대신하곤 합니다. 고장마다 다른 막걸리 맛을 느껴 보는 것도 걷기여행의 또 다른 묘미죠.”

무념무상의 걷기인지라 언제까지 계속하겠다는 계획도 딱히 없다. 다만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것인 만큼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통일이 된다면 국토의 절반쯤에 이르는 ‘쉼터’가 그곳이라는 생각에서다. 현재 전북 남원시 광한루까지 ‘북상’한 손씨는 지난달 31일 빼먹은 것까지 채울 겸, 현충일인 6일과 토요일인 7일 이틀 동안 내리 걸을 작정이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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