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국내 첫 푸드뱅크 5년째운영 성공회 김한승신부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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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승 신부가 28일 ‘푸드 뱅크’ 창고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 집’에서 결식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다.-전영한기자
김한승 신부가 28일 ‘푸드 뱅크’ 창고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 집’에서 결식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다.-전영한기자
“한국인은 굶어도 체면이 중요합니다. 미국처럼 무료급식소를 만들어 놓아도 주변의 눈 때문에 오질 않죠. 우리가 결식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김한승(金翰承·37) 신부는 1998년 5월 민간단체로는 국내 최초로 푸드뱅크 사업(팔고 남는 음식을 모아 결식자에게 나눠주는 운동)을 도입한 성공회 푸드뱅크의 실무 책임자다. 그는 사목활동에 주력하다 98년 사회선교부로 옮긴 뒤 5년간 푸드뱅크에만 매달려 왔다.

“빈민 문제나 사회복지에 문외한이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한 구조적 사각지대를 참 많이 발견했습니다.” 같은 푸드뱅크 사업이라 해도 미국의 경우 일종의 창고 역할만 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남은 음식을 받아오고 필요한 곳에 찾아가 전달하는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는 점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배웠다.

“처음에는 ‘땅콩들의 밥집’이란 지역단위 어린이 무료급식소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결식 어린이들의 발길이 끊겼어요. ‘저기 가는 애들은 가난뱅이’라는 놀림 때문이죠. 성인 무료급식소도 결식노인들에게서 외면을 받았는데, 마찬가지 이유더군요.”

그러던 중 98년말 푸드뱅크 사업의 노선을 바꾸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식소와 복지단체에 넘겨주고 남은 홍당무를 달동네에 줬는데 그 동네 아이들이 며칠 동안 홍당무만 삶아서 먹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 아주 가까운 ‘이웃’부터 굶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99년부터는 결식가정에 대한 도시락 배달에 나섰다. 현재는 매일 전국 30여개 지부에서 한끼 식사를 제공하는 1만1700여명 중 3600여명에게 도시락으로 식사를배달한다.

“한국은 세계 3위의 식량수입국(1500만t)이지만 매년 전국에서 400만t(약 15조원)의 음식쓰레기가 발생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가정보다 기업에서 폐기되는 음식물이 더 많습니다.”

성공회 푸드뱅크가 ‘구해낸’ 그런 식품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추석과 설 직후 팔리지 않은 10t 분량의 선물 세트, 밸런타인데이 직후 20t의 초콜릿, 입시철 뒤 버려지는 30여t의 엿, 성수기 신제품 탓에 폐기되는 12t의 아이스크림…. 지난해 광우병 파동 때 팔리지 않아 폐기처분될 위기에 빠졌던 소뼈 47t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말 한국서민연합회의 ‘올해의 위대한 서민대상’을 수상한 김 신부의 가장 큰 걱정은 정기 후원자 및 자원봉사자의 부족이다.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기업으로부터는 식품과 물품만 지원받고, 20여대의 차량 운영비와 물류창고 관리는 정기 후원자의 도움에 의존합니다. 도시락 배달 등에 나설 정기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절실하죠.” 후원 문의 02-736-5233, 인터넷 www.sfb.or.kr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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