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삼국지해제'…"유비-조조는 역사의 실패자"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03분


코멘트
사진제공 KOEI 코리아 그래픽 김동영 기자
사진제공 KOEI 코리아 그래픽 김동영 기자
◇삼국지해제/장정일 김운회 서동훈 공저/624쪽 2만4900원 김영사

삼국지가 ‘영웅의 서사’라는 점은 수백년을 이어오며 독자들이 공감해온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삼국지가 ‘실패자의 노래’라고 말한다.

왜 실패자의 노래인가.

유비를 먼저 살펴보자. 그는 천재적인 외교가이자 전략가인 제갈량과 방통을 두고도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천하의 영웅들과 힘 겨루기를 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황실 중흥’이라는 복고적인 구호만 외치는 바람에 수많은 인재들이 등을 돌렸다. 유비는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실패자였다.

조조는 어떤가. 천하 통일의 역량을 갖췄지만 원하던 바를 얻지 못했고, 그의 후손은 사마씨(사마의, 사마소, 사마염)에 의해 천하를 뺏겼다. 누구보다 많은 인재를 얻었지만 그가 얻은 것은 ‘충의지사’가 아니라 출세 지향적인 인물들이었다. 자기가 얻은 인재에게 자신의 결실을 빼앗긴 조조는 ‘자승자박한 실패자’로 볼 수 있다.

삼국지, 엄밀하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양에서 가장 널리 읽혀 온 고전이다. 오랜 역사를 걸쳐 끊임없이 재창작되고 연구의 대상이 돼온 이 책을 위해 ‘삼국지 전문가’를 자처하는 소설가와 대학 교수들이 만나 한 편의 해설서를 더했다.

삼국지를 실패자의 노래로 보는 것은 이들이 해석한 삼국지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에 따르면 진수가 펴낸 정사(正史) ‘삼국지’와 비교해볼 때 소설 삼국지는 ‘인물 묘사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된’ 책이다.

삼국지는 철저한 중국 중심의 가치관을 주변 국가에 전파하는 도구로 쓰여왔다. 이들은 삼국지가 문화적 제국주의를 전파하는 데 매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선한 발상이고, 솔깃한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이 재해석한 인물 평가는 흥미롭다. 가후라는 사람이 있다. 조조의 모사였던 가후가 삼국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삼국지를 ‘가후의 일대기’라고 과감하게 단정한다. 당시 가후가 관여한 사건을 모아놓은 책이 바로 삼국지라는 것. 가후는 동탁과 이각, 곽사의 모사를 지냈고, 순욱과 함께 조조를 도와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적벽대전에 나서는 조조를 말렸던 사람도 가후요, 조조가 죽은 뒤 그 아들 조비를 보필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했던 이도 가후였다. 때문에 이 책은 가후를 ‘삼국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로 본다.

그런데 이런 가후의 비중이 왜 작을까. 가후는 흉노족이 살던 서량 출신이라는 이유로(즉, 오랑캐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삼국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가후는 중화사상의 희생자라는 시각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은 동탁이나 여포에 대해서도 그들이 가진 ‘비 한족(漢族)적 요소’ 때문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관심을 가질 부분은 이 밖에도 많다. 삼국지에 나오는 전쟁을 현대적인 전쟁 이론을 통해 조명한 점이라든가, 현대의 정치 이론으로 삼국지 등장 인물의 리더십을 분석한 점은 ‘삼국지 담론’의 영역 확대로 보인다.

그럼에도 책의 전체적인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부분을 집필해 맞춘 듯한 모습이 역력한데, 이들 각 부분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탓에 마치 ‘논문집’같은 느낌을 준다. 때때로 보이는 논리적 오류와 비약도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 “동탁의 어머니가 90세까지 살았기 때문에 동탁은 효자였다”는 식의 ‘여담’은 빼는 것이 더 좋았을 대목. 삼국지의 전쟁을 이론적으로 풀어놓은 것은 좋지만, 이 이론을 현대의 기업 전략과 연결시킨 부분(게다가 삼국지와는 별 관계도 없다)은 책의 분량을 늘리는 것 이외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듯 하다. 지나치게 ‘삼국지 뒤틀어보기’ 또는 ‘삼국지 응용하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닐까.

삼국지를 샅샅이 풀어낸 이 책을 읽은 뒤 ‘미치지 못하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또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만나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