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후보 紙上검증]<下>공직생활 평가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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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 쏟아 부어서 시민, 국민의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의 자세로 일해 왔다.”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가 자신의 저서 ‘행정도 예술이다’ 서문에서 피력한 자신의 ‘행정철학’이다. 그러나 정권의 풍향에 너무 민감해 관료적 타성에 안주하지 않았느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두 차례의 서울시장과 총리시절을 포함해 30여년간에 걸친 그의 공직생활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행정의 달인인가, 무소신의 전형인가=이원종(李元鐘·현 충북도지사) 전 서울시장은 고 후보자를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고 후보자가 행정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일부 서울시 간부들도 복잡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 서울시는 행정가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였는데 고 후보자는 이 관문을 잘 통과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원인과 1 대 1 대화의 장을 마련한 ‘토요데이트’. 민원인과의 대화에 담당공무원들을 배석시켜 즉석에서 민원의 해결 가능성과 해법을 제시했다. 고 후보자가 민선 서울시장 시절 시행한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도 민원인이 민원 처리의 전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강홍빈(康泓彬) 전 서울시 부시장은 “고 후보자는 합리성과 신중함을 바탕으로 조직을 장악해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업무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조직장악 과정에서는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은 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고 후보자는 업무추진 과정에서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서 책임질 일은 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가 민선 서울시장 시절 50여개의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 시장’으로 불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의견수렴이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적을 만들지 않고 궁극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는 지적이다.

민선 서울시장 시절 고 후보자는 서초구 원지동 화장장 건설 문제가 이슈화하면서 서초구민의 반대가 심하자 사업 추진을 미루다가 재임 중 어떤 가시적 성과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소신과 처세?=고 후보자는 관선시장 시절의 수서사건에 대해 “외압에 맞서 서울시 조직을 지켰다”고 강조하고 있다. 90년 수서사건 당시 청와대에서 고 후보자에게 K국장 경질을 요구했을 때 이를 막다가 자신도 시장직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 후보자는 정권 상층부의 기류를 읽는 데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용산기지 이전 문제가 논의되던 당시 고 후보자는 청와대로부터 “주한미군이 아닌 일반 미국인의 용산기지 체류 사실에 대해 시정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고 후보자는 당시 일주일에 세 차례나 청와대에 진척사항을 보고하긴 했지만 보고엔 아무런 ‘알맹이’가 없었다”며 “그냥 일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환란(換亂) 책임론?=고 후보자는 97년 김영삼(金泳三) 정부 임기 말 총리를 맡으면서 환란 책임론에 휩싸였다.

98년 5월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후보는 “(고 후보자가) 만일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위기에 대해 사전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총리로서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고 후보자는 98년 5월7일 관훈토론회에선 “총리 재임 중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감(感)’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가 뒤늦게 “한국은행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보고받은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최연종(崔然宗) 당시 한은 부총재는 “이경식(李經植) 한은 총재가 총리에게 말해주라고 해 97년 11월9일 (고 후보자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말했고 고 후보자는 “당시 총리는 경제문제에선 열외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고건 총리후보자 가족 재산 공개 내용 (단위:천원)
구분종류내용금액
고건 후보자주택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택(대지 424㎡,연건평 262.68㎡)1,289,280
임야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660㎡)1,181
임차서울 종로구 동숭동 빌라(177.8㎡)300,000
임차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사무실(75㎡)74,200
예금기업은행(10,036),한미은행(2,691)12,727
채무동숭동 주택임대보증금△300,000
소계1,377,388
부인예금기업은행(4,193)4,193
부친주택 등경기 안양 호계동 샘마을아파트(164㎡) 외 기타 예금260,812
장남주택 등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삼성아파트(192.1㎡), 바로비젼 주식 등 유가증권, 기타 채권 채무1,260,399
장남 처예금 등예금, 자동차(싼타페) 등43,306
차남주택 등서울 성북구 성북1동 빌라(70㎡), 경기 성남시 분당구 양지 한양아파트(48.5㎡), 기타 예금 및 유가증권267,820
차남 처주택 등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아파트(106,75㎡), 잠원동 신반포4차아파트 (100.1㎡)임대보증금, 전북 전주시 완산구 주택 및 점포,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이지빌 2실 분양권, 자동차(폴크스바겐 골프), 기타 예금 등338,534
삼남예금 기업은행(8,571)8,571
총계3,561,023
△는 채무 금액이며 부동산은 공시지가 및 기준시가 기준임. (자료:국무총리실)

▼개인재산 실제가치는▼

국무총리실이 공개한 고건(高建) 총리후보자의 재산은 13억7738만8000원. 부친 자녀 며느리 등 가족 전체의 재산은 35억6102만3000원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고 후보자의 재산은 가족 재산을 빼더라도 공개 금액의 3배를 넘는 40억원대에 이른다. 고 후보자 일가의 재산도 실제 값어치는 공개 내용을 훨씬 웃돈다. 이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

공직자윤리법은 ‘토지는 공시지가, 건물은 지방세 과세표준액’에 따라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 후보자의 재산이 40억원대에 이르는 것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택의 시세가 공시지가의 3배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는 1983년 대지 128.4평, 연건평 79.5평인 2층짜리 단독주택을 샀다. 이곳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뒤편으로 카페와 음식점, 소극장 등 상업시설이 몰려 있다. 이 주택은 전용주거지역에 비해 활용가치가 높은 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서 있다. 다세대주택 근린상업시설 등으로 용적률에 따라 5층짜리 건물도 지을 수 있다.

인근 S공인중개사무소 Y씨는 “지난해 말 고 후보자 집과 인접한 건물(대지 120평, 연건평 320평)이 40억원에 팔렸다”며 “고 후보자의 주택은 땅값만 적어도 35억∼38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으나, 고 후보자측은 “실제 시세는 22억원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고 후보자는 동숭동 주택을 빌려주고 인근 67평형 복층 빌라를 전세로 얻어 살고 있다. 동숭동 주택은 임차인과 고 후보자가 주택 개조를 놓고 갈등을 빚어 공사 중인 채 방치돼 있다. 고 후보자가 살고 있는 빌라의 전세가는 3억원.

고 후보자는 국무총리 서울시장 등에 재임하던 97∼2002년 재산신고 때 동숭동 주택을 10억9641만4000원으로 신고했다. 이 기간에 동숭동 주택의 공시지가는 최고 13억1564만원을 웃돌았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그동안 재산공개 때 공시지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해당 재산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 최초 재산 공개 때 밝힌 공시지가를 그대로 신고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자주 만나는 인사는▼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는 오랜 관료생활을 통해 각계 각층의 인사와 교분을 맺어왔다.

고 후보자는 내무부 근무시절 관계를 맺은 손수익(孫守益) 전 교통부장관을 비롯해 경찰 출신인 이균범(李鈞範) 전 전남지사 등과 지금도 인연을 잇고 있다. 이들은 주말마다 서울 홍릉의 테니스장에서 ‘상록테니스회’ 모임을 결성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 전 지사는 “전직 공무원과 교수, 퇴직 언론인 등 20명 정도가 모여 테니스를 한다”며 “고 후보자의 테니스 실력은 아마추어 중상 정도”라고 말했다.

고 후보자는 또 거주지인 서울 동숭동 출신 원로와 각계 이웃사촌 16명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매일 오전 10시 동숭동 M카페에서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있어 ‘동숭포럼’이란 별칭도 붙었다.

고 후보자 외에 이세중(李世中) 전 대한변협회장, 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 정경균(鄭慶均)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신원식(申元植) 기아학술재단이사장 등이 주요 멤버다.

김동호(金東虎)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도 고 후보자와 돈독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 후보자는 정치권 인사들과는 접촉이 뜸한 편이지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장녀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의원과는 종종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高후보의 역대 대통령 평가▼

《박정희(朴正熙) 정권부터 김대중(金大中) 정권까지 6개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는 “각 정권엔 나름대로의 ‘시대정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후보자가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살펴본다.》

▽박정희=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봅니다. 국민들의 에너지를 근대화에 결집시켜 지도해 나갔으며 그런 점에서 경제개발과 근대화, 국력신장 등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분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98년 8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참 사생활이 검소해. 농촌근대화와 가난극복에 대한 의지와 집념, 그리고 끈질긴 노력이 돋보였어요.”(2002년 9월호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최규하(崔圭夏)= “글쎄, 제가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고. 좌우간 말씀이 적은 것만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자상할 때도 있었어요.”(99년 10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최 대통령을 보면서 국가지도자는 저렇게 우유부단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전두환(全斗煥)= “친화력도 있지만 리더십이 있어요. 결정을 빨리 해요. 그리고 자신이 잘못 내린 결정을 흔쾌하게 바꿀 줄 압니다.”(99년 10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기억력이 비상해요. 그리고 합리적으로 얘기하면 잘 받아줬어요.”(2002년 9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노태우(盧泰愚)= “제가 모셨던 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요.”(99년 10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지도자로서 노태우는 어떤 인물이었나’라는 질문에)

▽김영삼(金泳三)= “제가 모시고 있는 동안 YS는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려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불면증에 걸려 몇 달 동안 고생했어요. 오전 2시에 일어나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잡아넣지 않았습니까.”(99년 10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김대중= “상당히 박식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뭐 그런 느낌이었어. 아주 박식해.”(2002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노무현(盧武鉉)=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으면 관철하는 정치인이다. 여러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원칙있는 리더십이랄까. 그러니까 (지난 총선에) 종로를 놔두고 부산에 간 것 아니냐.”(1월20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했는데 그걸 과격한 혁신이라 할 수 있나. 21세기 글로벌시대에는 선진 10개국(G10)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같은 자리에서 ‘재계가 노 당선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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