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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NGO회원]"개그대학 만들고파" 개그우먼 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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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NGO회원]"개그대학 만들고파" 개그우먼 김미화

입력 2001-03-30 13:58수정 2009-09-2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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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의 한 건물 안. 사회과학계열 01학번 신입생인 김미화씨가 입학 후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1964년생. 어느 새 마흔을 바라보는 그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뜻밖이라고? 대충 대학졸업장이나 하나 따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사실 이 나이에 대학 들어가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공부에 매달리다 보면 몇 개월, 아니 몇 년동안 아무런 수입없이 지내야 하는데 연예인으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죠.

최근 연예인 특례입학을 놓고 말들이 많아서인지 저에 대해서도 안좋은 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던데 사실 섭섭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냥 제가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방송사마다 봄철 프로그램 개편이 한창인 3~4월, 그는 개그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캐스팅 1순위에 오르는 '귀하신 몸'이지만 출연섭외를 해오는 프로듀서들에게 "나에겐 학교 수업일정이 우선이니 거기에 맞춰줄 수 있겠느냐"는 말로 먼저 말문을 막아버린다.

그런데 김미화가 웬 사회복지? 언뜻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그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선택에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나눔'만은 아낌없이 해온 사람▼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린 시절을 가난한 동네에서 보냈어요. 그 때는 물론 빨리 개그우먼이 돼서 돈벌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돈 벌면 불우한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죠.

어릴때 꿈처럼 인기 개그우먼이 됐지만 마음은 있어도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혼자 찾기는 좀 쑥스러운 일이잖아요. 다행히 여기저기에서 요청이 있어 사회복지시설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깊이가 없이 얼굴만 비치는 것이지, 진정으로 돕는게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죠."

사회복지의 정신을 '나눔'이라고 정리한다면 그는 그 일만큼은 정말 아낌없이 해온 사람이다.

평소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있어 홀로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후원자와 연결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는 '사랑의 삼각끈' 운동본부장을 선뜻 맡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방송 명예대사직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국제연합아동기금을 통해 불우 어린이에게 비행거리 1km에 따라 1000원씩 기증된다는 말에 두달동안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와 미국을 누비기도 했다. 방송중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무서워서 헬리콥터 타기를 거부했던 그다.

"좋은 일은 시간만 허락한다면 달려가서 하는 편이에요. 돈을 떠나서 그분들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대해 주시기도 해서 보람도 있고 저에게도 맞는 일 같아요.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죠. 사실 제가 유명하지 않으면 그렇게 저를 찾지도 않을 텐데…"

그런 그이기에 총선연대의 낙선참여운동을 계기로 이런저런 시민단체 행사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게다.

총선연대 활동 당시 오한숙희씨와 함께 '아줌마대표'로 나와 "정치인들이 시민을 무서워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지지발언을 하고 선거운동 관련 라디오 광고방송에 무료 출연도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 후원의 밤'에서는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토크쇼를 진행했다.

또 한국여성기금 1호 홍보대사로서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름다운재단과의 공동캠페인 '나눔 2001'의 홍보자원활동가로 나서기도 했다.

"라디오 광고방송을 위해 참여연대 사무실에 한번 들렀는데요. 제가 참여연대 회원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분들이 다 건전하고 열정적인 것 같아서 보기가 좋던데요. 저도 사실 평범한 시민인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통해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총선연대 때 이런저런 활동을 좀 했더니 저보고 '골수 참여연대다' '나중에 정치하려고 그러냐'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최근 경비행기 여행을 마치고 그는 자기안에 숨어있던 모험심을 새삼 발견했다고 한다.

크지는 않지만 재치있게 또록이는 그의 눈. 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여전히 도전할 거리가 많다.

현재 그는 법률전문 인터넷 방송에서 변호사와 함께 '김미화의 변호사없이 소송하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까다로운 법률지식을 서민들이 다가가기 쉽게 재미있게 풀어주는 역할에 매우 만족한다고 한다.

"상담을 의뢰해온 사연들을 보면 집주인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세입자나 보증, 이혼문제 등이 많아요. 특히 보증문제 그건 정말 심각하던데요. 보증보험이라는게 생겼다지만 그걸 들려면 누군가 또 보증을 서줘야 하는거에요. 그래서 보증을 한번 잘못 서면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3대가 다 망하게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좀 어떻게 법으로 보호해줬으면 좋겠어요."

▼개그전문 단과대학 만들고파▼

1983년 KBS개그 콘테스트로 데뷔, 올해로 경력 19년을 헤아리면서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려온 그.

연륜에 안주하지 않고 ==한구 방송을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려야 하는 '개그 콘서트'를 1년동안 끌어온 것을 보면 또래 개그우먼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쉽진 않았죠. 다들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코미디 분야였으니까요. 그래도 후배들과 아이디어 싸움을 하면 여전히 지지않을 자신이 있어요."

이런 은근한 자기자랑이 밉지 않은건 '개그 콘서트'등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그만의 순발력 때문이다. 결국 "믿씹니다"로 답할 수 밖에….

남몰래 대학원에서 방송 공부를 4년여 동안 했고 이제는 생소한 사회복지 공부까지 시작했다. 모두 10~20년 뒤를 내다보는 착실한 발걸음의 이정표일뿐.

"사실 제 꿈은 나중에 개그만 전문으로 하는 단과대학을 만드는 거에요. 그것을 사회복지와 잘 연결하면 정말 웃음이 있는 재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쯤이면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리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한두 과목은 반드시 수강해야 할 것 같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제 얼굴 한번 내보임으로써 선전효과가 열배는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부터 솔선수범해서 사회활동도 하고 기부같은 것도 해야겠죠. 미국의 영화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한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건물을 기증해서 학생들이 영화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했다던데 개그우먼인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사회로 환원할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사람이 나이들면 어떻게 존경받고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혹시 나중에라도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딴마음이 끼어들어 초심이 흐트러질까봐 인터뷰할때 일부러 이런 얘길 자주 한단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커먼 일자눈썹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 질러대던 순악질 여사의 표정을 찾다가 결국 화장기 없는 얼굴의 '평범한 시민' 김미화 씨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발길을 돌린 순간 시민운동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저는 사실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라면서 말머리를 돌리던 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언니는 벌써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우?"

한혜영/참여사회 객원기자

(이 글은 참여사회 4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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