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변칙처리]못버린 구태…'相生' 헌신짝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09분


21세기 새로운 의회 문화 구현을 약속하며 출범한 16대 국회가 개원 후 첫 임시국회부터 여야 의원들간의 몸싸움 속에 법안이 날치기 처리되는 등 파행으로 얼룩졌다.

날치기 파동으로 20일 여야의 국회 정상화 합의는 없던 일이 됐다. ‘4·13’총선 선거부정과 편파수사 시비를 따지기 위한 법사―행자위 연석회의와 기타 상임위 활동도 일제히 중단됐다. 긴급한 민생 현안을 눈앞에 쌓아두고 정국이 한순간에 여야 극한 대치국면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1차 충돌〓24일 오전 11시경 민주당과 자민련이 원내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 운영위에 상정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 총무단이 운영위 회의장에 총집결했다. 오전 11시40분경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원내총무가 회의장에 나타나자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수석부총무는 위원장석을 차지한 채 회의 개의를 막았다.

정총무는 이후 오후 12시반까지 두차례 더 회의 개의를 시도했으나 원희룡(元喜龍) 엄호성(嚴虎聲)의원 등 한나라당 부총무들이 몸으로 막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하게 취재 중이던 한 사진기자의 플래시가 깨지기도 했다.

▽2차 충돌〓정총무는 민주당 의원 50여명과 함께 오후 2시19분경 운영위 회의장 재진입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막았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 “비켜”, “어디서 반말이야” 하고 소리쳤고, 정총무는 이 사이에 슬그머니 방향을 바꿔 방청객 출입문 쪽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정총무가 회의장 중앙을 지나 위원장석으로 다가가자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 등 한나라당 의원 30여명이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여야 의원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이 “날치기하자는 거야”라고 소리치자 여당 의원들은 “다수결로 해야지 왜 막아”라고 맞고함쳤다.

▽날치기 순간〓정총무가 창가로 옮겨가자 한나라당 의원들도 우르르 정총무 쪽으로 몰렸다. 관심이 온통 정총무 주변에 쏠려 있는 사이에 민주당 천정배(千正培)수석부총무가 국무위원석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운영위원회 개의를 선언합니다” 하며 기습적으로 개회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저기 막아”라며 천수석을 에워싸 천수석의 목을 거머쥐고 끌어당겼다. 그러나 천수석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의사일정 제2항 국회법 개정법률안을 상정합니다. 제안설명과… 되었음을 선언합니다”라고 소리쳤다. 한나라당 고흥길(高興吉)의원 등이 의사봉을 빼앗았지만 천수석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민주당 사무처 직원은 끌려가는 천수석을 따라가며 의사봉 받침대를 내밀었다.

▽여당은 자축, 야당은 격분〓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1년6개월 만에 합동 의총을 열고 날치기 처리를 자축했다. 천수석은 날치기 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운영위 회의장과 본회의장에서 잇따라 의총을 갖고 날치기 처리 무효를 선언했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의총에서 “여당이 수의 힘으로 압박해 모욕감을 느낄 때도 상생(相生)의 정치를 위해 참아왔다. 오늘 여당은 모략과 음모로 쓰레기 같은 정치를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뭉쳐야 한다”며 강력 대처를 촉구했다.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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