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맛' 더 가까이…수수하고 담백한 맛

  • 입력 2000년 6월 13일 2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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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면 입맛의 통일도 이뤄질까. 남북정상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북한음식이 우리곁에 바짝 다가왔다.

정상회담 첫날인 13일 서울 을지로 평양냉면집 우래옥(02-2265-0151) 손님들은 뭔가 홀린 듯 뚝뚝 끊어지는 냉면면발을 씹고 있었다. 쌉쌀한 맛이 감도는 육수는 이날따라 왜 그리도 혀에 감기는지. 수년에서 수십년 먹어온 실향민들도 이날은 새롭게 평양냉면을 음미하는 표정이었다.》

▽북한의 음식맛〓“북한음식은 조리법이 덜 개발된 덕분에 음식재료의 고유한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요.”

“인스턴트식품이 많고 자극적인 남한음식과 달리 북한음식은 저장 발효음식이 많고 맛도 수수하고 담백합니다.”

귀순전 요리사로 일하다 남한에서 조리사자격증을 딴 북한음식전문가 강봉학씨의 말. 귀순자들이 전하는 북한 음식은 그러나 너무나 딴판이 돼버린 남한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음식은 분단이 가져온 민족문화의 이질화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분야이기 때문. 미각은 어머니의 손맛을 아련하게 기억한다고 해도 기후와 토질의 차이, 남북한의 판이한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북한 음식맛은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이제는 실향민들 조차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혀로 뭔가 다른 고향의 맛, 어머니의 맛을 찾고 있다.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의 음식문화를 외곬으로 파고들며 ‘음식전쟁, 문화전쟁’을 써낸 세종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주영하씨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북한음식전문점이 내세우듯 북한에선 너무 가난해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한다거나, 천연무공해 음식이라든가 하는 피상적 접근은 우리 음식문화 ‘반쪽’을 왜곡하는 얘기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음식과 그 음식의 맛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맛의 통일’도 가능하겠지요.”

▼이곳에 가면 맛볼 수 있어요▼

▽호텔서 맛보는 북한맛〓남북정상회담에 맞춰 특급호텔들은 입맛장사에 나섰다.

서울 리츠칼튼호텔은 15일까지 3층 뷔페식당(02-3451-8474)에서 숭어국과 어복쟁반 되지비 평양냉면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말 평양을 다녀온 총주방장 롤랜드 히미가 자신이 구해온 ‘이름난 평양음식’(북한 조선료리협회 펴냄)을 토대로 한식조리과장 김영배씨와 머리를 맞대고 ‘평양음식’을 재현했다.

모두 24쪽으로 구성된 이 책엔 평양냉면 쟁반국수 대동강숭어국 녹두묵채 소발통묵 등 11가지의 평양특산음식에 대한 소개와 조리법이 있다. 부록으로 음식을 만드는 요령 몇가지로 간맞추기와 생선국 맛있게 끓이기 고기국물 맛있게 뽑기 등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대동강 숭어국은 숭어의 고소한 살맛과 시원한 국물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평양 옥류관에서 직접 맛을 본 사람들은 전한다. 리츠칼튼에서도 숭어에 후추를 넣어 끓여 평양의 맛을 재현.

평양냉면은 ‘뛰어난 맛과 높은 영양가, 고상한 민족적 풍미와 고명의 조화로 하여 볼품도 있고 다채로운 우리나라 여러 지방의 국수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조선민족풍습’(북한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실 엮음)에 소개돼 있다. ‘가늘고 질긴 국수오리에 시원하면서도 달고 새큼한 국수물맛이 잘 어울려 뒷맛을 감치게 하는 특징을 가졌다’는 설명.

어복쟁반은 서울 남포면옥(02-757-2269), 만포면옥(02-2267-3934)에서도 맛볼 수 있는 평안도음식. 놋쟁반에 양지머리 유통 지라 우설등의 편육과 메밀국수를 담고 육수를 부어가면서 먹는다. 되비지는 콩을 맷돌에 갈아 돼지갈비와 함께 끓이는 구수한 맛의 찌개. 특히 평안도지방의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콩을 되직하게 갈아 만들어 되비지탕이라고도 한다.

부산 롯데호텔이 30일까지 한식당 무궁화(051-810-6330)에서 내놓는 ‘평양 대동강 반상’과 ‘백두산 천지반상’‘산해진미 개성반상’도 맛볼만하다. 가두김치(양배추김치) 동치미 산나물 청포묵 무짠지무침이 기본찬. 보쌈김치 가자미식해 강냉이죽 황태구이가 공통으로 나오고, 닭도리탕 동치미냉면(이상 평양) 오징어순대 함흥회냉면(이상 백두산) 대하찜 개성꿩만두국(이상 개성)도 북한식으로 조리돼 나온다.한식경력 35년을 자랑하는 한식당 주방장 유광호씨가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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