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평양방문 이모저모]

  • 입력 2000년 6월 13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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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REPUBRIC OF KOREA'라는문구 및 태극마트가 선명하게 새겨진 특별기와 민항기 등 항공기 2대가 13일 오전항공로를 통해 북녘땅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앉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공식수행원을 태운 특별기와 특별.일반수행원과 공동취재단을 태운 아시아나 B-737기(1002편)는 이날 오전 9시45분께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측 영공으로 들어갔다.

남북간의 `하늘 길'이 막힌지 55년만에 처음으로 열린 순간이었다. 아시아나 기장은 비행기가 북한영공으로 들어서기 직전 안내방송을 통해 "10초후 38도선을 넘는다. 3시 방향에 우리영토인 백령도가 보이고 2시방향에 북측 장산곶이 보인다"며 하늘길이 뚫렸음을 알렸다.

창을 통해 들어온 북녘땅은 옅은 구름에 덮여 자세한 풍광을 볼수 없었다. 기내에는 곳곳에서 가벼운 흥분과 술렁거림이 일었으며, 55년동안 막혔던 무거움에 비해막혔던 장벽은 너무 가볍게 뚫렸다.

공동취재단을 비롯한 대표단은 일제히 창밖의 북한땅 풍광을 보기 위해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마침내 북한땅을 밟게 됐다"는 탄성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에 앞서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는 9시15분쯤 서울공항을 이륙했으며 수행원을태운 아시아나기도 곧이어 이륙했다.

수행원을 태운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내방송에서는 "서울서 평양까지는 1시간25분이 소요될 예정이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륙에 앞서 수행 관계자는 "북측의 요청에 따라 수행원들의 신분과 사진대조를위해 앞문으로 경호요원 특별수행원, 뒷문으로는 일반수행원과 기자단이 내려달라"며 일일이 탑승자들을 호명했다.

수행원을 태운 아시아나기는 9시20분 서울공항을 이륙한 직후 서해를 향해 자세를 잡았으며 5분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영종도 신공항 건설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시아나기는 이어 9시40분께 방향을 선회, 북쪽으로 날기 시작했으며 5분뒤 38도선을 넘고 다시 9시50분께 기수를 동쪽으로 틀어 평양쪽으로 들어갔다.

평양 순안공항이 가까워지면서 난기류로 잠시 기체가 흔들리기도 했으나 창으로북녘땅의 산하가 뚜렷하고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시아나기 기장은 이때 방송을 통해 "20분후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며 평양은현재 맑게 개이고 기온은 섭씨 22도 정도"라고 안내한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다시한번 기원했다.

평양 순안공항이 가까워지면서 들어온 나지막한 동산, 도로, 하천 등 북녘의 풍광은 남녘땅과 다를바 없었다.

논에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곳곳에 물이 차 있었으며 북한주민들이 모내기를 하는 광경이 보였고 일부 주민들은 일손을 멈추고 남측 대표단의 비행기를 쳐다보기도했다.

공항 주변의 동산에는 돌을 모아 새긴 것으로 보이는 `위대한 주체사상 만세'라는 구호가 눈에 띄기도 했다.

평양 순안공항 주변은 소박하지만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각종 시설물도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었다.

공항 주변에는 양복과 군복차림의 북측 경비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특별기는 서울공항을 먼저 출발했으나 평양 현지 행사관계로 수행원을 태운 아시아나기보다 15분정도 늦은 10시27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수행원을 태운 아시아나기의 바퀴가 평양 순안공항에 굉음을 내며 닿자 기내에서는 일제히 "와"하는 탄성과 함께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항환영행사를 끝내고 오전 10시50분 순안공항을 떠난 차량행렬은 20분만인 11시10분께 평양시 입구인 연못동에 도착해 잠시 정차했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곳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으며, 악수를 하기도 했다.

평양시민들은 평양시 입구에서부터 연도에 나란히 서서 진홍색과 분홍색 조화(꽃술) 등을 흔들며 숙소로 가는 김 대통령 일행을 환영했다. 시민들은 조화를 열렬히 흔들며 "만세" "김정일 결사 옹위(擁衛)"를 끊임없이 외쳤다.

환영인파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으나 10여㎞에 겹겹이 늘어선 것을 감안할때 줄잡아 100만명은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평양시민이 총 220여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성인들은 모두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도 있었다.

한 안내원은 "평양시민들이 대부분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남측의 대통령을열렬히 환영하기 위한 자발적인 인파"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안내원은 "어제 김 대통령이 오는 것으로 알고 공(허탕)을 쳤다"며전날에도 사람들이 나왔다가 되돌아간 일이 있다고 밝혔다.

안내원들은 또 "위대하신 장군님이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환영하기 위해 조치를취했다. 소감이 어떠냐"고 묻고 "김정일 장군님이 광폭(廣幅) 정치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남측 통일사절들이 그런 기대에 보답하지 않으면 정말 안된다", "어제는 날씨가 흐렸는데 날씨도(김 대통령이 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같다"면서 "몇시간 전에만 동원령을 내리면 시민들이 모두 동원될 수 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도이처럼 시민들이 환송을 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연도의 시민들은 남자들의 경우 양복을 입거나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으며 여자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흰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의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시민들은 조화를 위 아래로 흔들면서 주로 "만세 만세" "김정일 김정일 결사옹위 결사옹위"라는 두가지 구호를 일사불란하게 끊임없이 외쳤다.

차량행렬은 연못동에서 4.25 문화회관까지의 `용 거리', 전승기념관까지의 `비파거리', 보통강 강안도로, 보통문, 만수대의사당, 옥류교, 만수대 언덕, 개선문 거리, 종로거리, 김일성 종합대학까지 평양의 주요거리를 10여㎞정도 순회했으며, 환영인파가 단 한곳도 빠짐없이 연도를 메우고 있었다.

차량행렬은 시속 평균 30㎞ 정도로 달렸고, 연도의 환영인파가 꽃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장면은 11시40분까지 무려 3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연도 중간중간에는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환영인파로 나온 시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은 편이었으며, 행렬이 지나갈 때는더욱 큰 소리로 함성을 쳤다. 일부 시민들은 차도로 몸을 들이밀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공식 차량행렬이 끝나자 기자들이 탄 차량은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한 본대와 분리돼 기자들의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으며 집이나 직장으로 되돌아가는 평양시민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반가운 표정으로 꽃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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