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 입력 2000년 3월 17일 19시 09분


“포스트식민주의는 식민 직후에 신비화 효과를 갖는 기억상실에 대한 이론적 저항이다. 그것은 식민 과거를 다시 방문하여 기억하고 따져 물으려는 학문적 임무를 맡은 하나의 학문 분과적 기획이다.”

호주 라 트로브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원제목 Postcolonial Theory: a critical introduction)에서 “식민주의는 식민 점령의 종언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식민지였다는 상황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불가피한 상호의존관계로 엮으며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포스트식민주의다. 식민 상황을 기억하고 직시하는 것은 결코 자기 반성이나 회고와 같은 정태적 행위가 아니라 현재 드러난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 조각난 과거를 짜맞춰 보는 고통스러운 회상이다. 저자는 포스트식민주의가 밟아 온 궤적을 좇으며 그 전망을 제시한다.

식민사회에서 서구 시민사회인 듯 자처하는 행위의 허구성을 폭로하려 했던 모한다스 간디와 프란츠 파농은 바로 포스트식민주의적 문제의식의 선구를 보여 줬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서구의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에 대항하면서 포스트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적 성향과도 결합한다. 예컨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주요한 성과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78)도 미셸 푸코나 자크 데리다 등의 포스트구조주의적 담론에 의존하고 있다. 포스트식민주의는 페미니즘과도 만난다. 페미니즘 계열 일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인종문제나 정치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제국주의의 조건 하에서 여성이 겪은 ‘이중 식민화’가 불가피하게 간과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 시대 포스트식민주의에 나타나는 큰 변화는 포스트민족주의로 선회하는 현상이다. 반식민 민족주의적 관점이 종종 식민 경험을 억압과 보복 사이의 대립이나 딜레마에 국한시키는 데 비해 포스트민족주의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동질화 앞에서 민족적 경계는 무용한 것이거나 적어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식민 지배자와 식민지인의 상호 변화에 대한 강조를 통해 식민 과거를 비폭력주의적으로 읽어내자는 포스트식민주의의의 제안, 그리고 제도화된 수난에 대항하기 위해 문명들 사이의 유토피아적 동맹을 제시하는 포스트민족주의의 청사진은 일단 ‘건강’하다. 이영욱 옮김 246쪽 1만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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