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물 장씨부인-나해석… '현모양처'만이 美인가?

  • 입력 1999년 11월 28일 18시 51분


안동 장씨부인과 나혜석.

11월과 내년 2월 문화인물로 선정된 두 여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장씨부인은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임으로써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받았기 때문에,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였기 때문에 선정됐다는 것이 문화관광부의 설명이다.

당초 여성계에서는 장씨부인의 인고의 삶은 현대 여성의 귀감이 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나혜석의 선정과정에서는 ‘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정조를 강요하는 사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므로 문화인물이 될 수 없다는 일부 자문위원의 반발을 샀다.

한쪽은 가부장적 사회에 순응했다는 점에서, 다른 쪽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각각 논란을 일으킨 셈이다.

그러나 장씨부인을 단순히 현모양처만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역사 속의 여성을 기존 시각과 다르게 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겨울호에서 ‘여성인물 새로 보기’를 기획한 박미라 편집장은 “장씨부인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 인물”이라며 이문열씨가 97년 소설 ‘선택’에서 페미니즘 공격 소재로 장씨부인을 동원하는 바람에 그의 실체가 가려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작가 김신명숙씨는 소설 ‘허난설헌’을 통해 빼어난 여류문인 정도로 알려진 난설헌을 가부장적 지배질서에 맞서 싸운 반항적 영혼의 소유자로 되살려내기도 했다.

한국여성개발원이 펴내는 월간 ‘한국여성’에서 논개 혜경궁홍씨 김마리아 등을 소개한 ‘한국역사 속의 여성인물’시리즈도 이같은 시도의 일환. 김혜경 연구위원(여성개발원)은 “남성중심의 역사서술로 인해 적잖은 여성들의 참모습이 왜곡돼 왔다”며 주어진 사회질서 속에서도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간 여성을 재조명, 우리 딸들이 ‘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여류문학의 꾸준한 발굴로 유명한 국문학자 김용숙씨(전숙명여대교수)는 “‘현모양처’란 하나의 잣대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여성인물’을 찾아 남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간 역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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